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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탄소여름, 그리고 핵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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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사상 최악의 폭염이 사람들을 고통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사병으로 사람이 죽고, 온열 질환자가 병원 응급실로 몰려든다. 지하철 대합실은 탑승객이 아니라 피서객으로 가득하다. 농촌에선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수백만 마리가 죽었다. 과일과 채소도 폭염으로 자라기는커녕 마르거나 탄저병으로 죽고 있다. 아직 길게 남은 8월 동안 사람에게, 동물에게 그리고 농작물에게 무슨 험상궂은 일이 생길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기록적인 폭염, 가뭄,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묻지도 않았는데, 택시 기사가 전문가처럼 내뱉었다. “전기 석유 펑펑 쓰더니 그 죗값을 더위로 되돌려받게 되는 것 아닙니까?” 종일 운전하면서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기후변화 원인을 자연스럽게 공부했던 모양이다.

“세계가 기후변화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지금 같은 폭염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 8월 4일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의 지적이다. 뉴노멀(new normal)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정립되는 표준을 뜻하는 말이니, 올해처럼 기록을 깨는 폭염이 다반사가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인류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 20년 또는 50년?

견딜 수 없는 폭염이 쏟아지던 지난주 잠시 영화관으로 피서를 갔다.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임파서블6’를 구경했다. 처음엔 잃어버린 플루토늄 가방을 탈취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엔 기폭장치가 작동된 핵탄두 폭발을 중지시키기 위해 절체절명의 헬리콥터 추격전이 숨 막히게 펼쳐는 스파이 스릴러를 보며 잠시 더위를 잊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재미에 중점을 두고 만든 허구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를 반영한다. 조그만 가방에 핵분열 물질을 담아 거래하고, 히말라야 산 중턱에서 소형화된 핵무기를 폭발시켜 아시아 전체 인구가 마시는 수원(水源), 즉 빙하를 방사능 오염으로 몰아가려는 테러세력의 음모가 단순히 만화 같은 얘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핵무기는 여전히 인류를 종말로 몰아갈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섭씨 38도의 열파를 다시 마주하며 문득 작년 여름과 올여름 사이에 놓인 시차(時差)를 떠올렸다. 올여름엔 폭염이 무섭지만, 작년에는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니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핵미사일 위협 발언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영화의 핵폭파 위기와 현실의 폭염 속에서 문득 ‘핵겨울’(Nuclear Winter)과 ‘탄소여름’(Carbon Summer)이란 개념이 중첩되어 떠올랐다.

‘핵겨울’은 미·소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3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 등 미국 과학자들이 논문을 통해 핵전쟁에 의한 기상변동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인류의 종말을 경고하는 시나리오다. 대규모 핵전쟁으로 핵구름과 먼지가 하늘을 덮어 햇볕을 막음으로써 기온이 급강하면서 세상이 얼어붙고 농작물이 죽는 등 대재앙이 발생한다는 가설이다. 핵겨울 시나리오는 당시 미국 지식인 사회에 위기의식으로 급속히 퍼졌고, 핵무기 감축에 대한 담론을 일으켰다.

‘탄소여름’은 핵겨울 가설이 소개된 지 5년 후인 1988년 미국의 물리학자 에릭 스톰이 상원 청문회 증언에서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핵겨울 모델과 대비시켜 만든 말이다. 2007년 환경 영화 ‘불편한 진실’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수상연설에서 ‘탄소여름’이란 말을 다시 꺼내면서 유명해졌다.

에릭 스톰이 ‘탄소여름’이란 말을 만들 때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가 탄소화합물인데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다. 기후변화로 뜨거워진 여름을 이렇게 원인까지 꼭 짚어 상징해주는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택시 기사도 기후변화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5년 전, 즉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지구환경정상회의가 열릴 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지구온난화’니 ‘기후변화’니 하는 말을 거의 몰랐다. 이제 기후변화는 핵무기 확산 문제와 더불어 21세기 인류생존이 걸린 긴급한 현안이 되었다.

기후변화는 이미 수년 전 미국과 영국의 전략가들 사이에서 국가안보 또는 세계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 요인으로 분석되었고 또 안보전략의 변수로 편입되어 가는 추세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공포의 시나리오 중 하나가 기후변화가 일으킬 핵전쟁 가능성이다. 기후변화로 농업이 위기에 처하면, 대량 난민이 발생하면서 전쟁을 벌어지고 그게 확전되면 세계가 핵무기까지 사용되는 극도의 혼돈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공상과학 만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기후변화에서 시간은 인류의 편에 서 있지 않은 것 같다. 탄소여름을 식힐 인류의 지혜가 절실하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끝날 거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끝날 거라고 말한다.
내가 맛본 욕망에 비춰 보면
불로 끝난다는 사람들의 편을 들고 싶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100년 전 쓴 시 ‘불과 얼음’(fire and ice)의 시구가 의미심장하게 마음에 와 닿는 2018년 8월이다. <뉴스1 고문>

  jjy121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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