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하늘이 농사 짓는 곳인데…"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인 7일 오전 국내 최대 당근 주산지인 제주시 구좌읍의 한 당근밭.

올해로 44년차 이 지역 토박이 농사꾼인 부화순씨(68·여)는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인부 3명과 함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있었다.

홀로 1600㎡(500평)짜리 당근밭 세 곳을 일구고 있는 데다 지역에 일손도 적어 인부들을 기다린 지도 이날로 보름째.

날짜를 맞춰 전날 밭고랑에 당근 씨앗을 심은 부씨는 마음이 급한 듯 마른 입술을 깨물며 거듭 작업을 재촉했다. 파종기(7월20일~8월10일)가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농사를 시작한 이래 스프링클러를 처음 설치해 본다던 그는 "구좌읍이 속한 제주시 동부는 여름에도 비교적 비가 많이 내려 우리끼리 '하늘이 농사 짓는 곳'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올해 상황은 정반대"라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달 10일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29일째 비 한 방울 없는 폭염이 이어져서다.

부씨는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파종기를 넘겨 파종하면 수확량이 30% 가량 줄고, 파종기를 놓쳐 다른 월동채소로 작목을 바꾸면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딜레마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단 파종기에 맞춰 파종하기로 했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바에 일단 파종하고 보름 안에 비가 내리길 바라는 것이 최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작업시간이 끝난 인부들을 돌려보낸 부씨는 미처 작업을 끝내지 못한 빈 밭을 보며 "비가 안 오면 빨리 쪽파라도 심어야 될 텐데…"라고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도 농업기술원 기상관측소 30곳 가운데 토양의 수분 흡인력을 뜻하는 토양수분장력이 501㎪ 이상인 가뭄 지역은 제주시 신엄리·와산리·동복리·동명리와 서귀포시 위미리 5곳으로 파악됐다.

토양수분장력이 10㎪ 이상 500㎪ 이하인 초기가뭄 지역은 제주시 신촌리·용강동·세화리·서광리·감산리·한동리, 서귀포시 서귀포시 강정동·중문동·상예동 등 모두 16곳에 달했다.

이처럼 도 전역이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면서 최근 생육기에 접어든 콩·참깨·밭 벼 등은 초기 생육부진으로 수확량이 줄고, 현재 비대기인 노지감귤은 강한 직사광선에 따른 일소(햇빛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당근 파종시기 일실에 따른 도미노적 수급 불안이다.

전날 기준 현재 도내 당근 계획면적의(1440ha)의 81%에 달하는 1164ha에서 파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앞서 부씨의 우려처럼 당근 수확량 감소 또는 작목 전환에 따른 월동채소 생산과잉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도는 급수장비와 급수차량을 총동원해 당근 주산지인 구좌읍에 지원하는 한편, 소득보전 한시 적용, 보리·유채 등 타 작목 전환 등의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김은섭 당근생산자협의회장은 "제주시 동부의 경우 농업용 관정이 부족한 데다 밭에 연결되는 관정 구경도 25㎜에 불과하다"며 "밤 새우며 물을 줘도 당근을 발아시킬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도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우철 도 농축산식품국장은 "농업용 관정을 설치할 당시 기본 설계 규모가 조금 작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농업용 관정 크기를 배 이상 키워 매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