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를 왜 막습니까?", "위험하잖아요!"

16일 오후 제주시 비자림로 앞.

도로 확·포장 공사가 중단된 지 일주일째인 이날 비자림로에는 부슬비가 내린 탓에 여느 때보다 진한 흙내음이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대는 여전히 황량했다. 도로 옆 3m 높이의 안전 펜스 너머에는 밑둥만 남은 채 잘려나간 나무 수백그루만 늘어져 있었다.

공터가 돼 버린 이날 이 곳에는 SNS를 통해 알음알음 모인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들'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베어진 비자림로의 현장에 아파하는 많은 시민들이 생태학습의 소중한 공간으로서 비자림로를 찾고 있다"며 "이 곳에 텐트를 치고 공사가 진행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고 오큐파이(Occupy·점령) 운동을 선언했다.

이에 시공사 측은 안전 문제를 우려하며 이들을 막아섰다.

시공사 관계자는 "14일부터 오늘 아침까지 펜스 설치 작업만 했을 뿐 공사를 재개하지 않았다"며 "이 곳에 사람과 차량이 드나들다 보면 안전사고가 불가피하다"고 거듭 만류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모임 측과 주민 측 간 몸싸움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시민모임 측인 김모씨는 "공사가 중단된 지금은 자연 그대로를 놓고 열린 논의가 필요한 때"라며 "펜스를 설치한 것은 너무 과한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근 주민 홍모씨는 "누가 누구 보고 나가라 마라 하는 것이냐. 괜한 갈등을 조장하지 마라. 이럴 수록 힘든 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주민"이라고 맞섰다.

이날 상황에서도 드러나듯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에 대한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주민들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공사가 주민 숙원 사업임을 강조하며 공사 재개를 촉구한 반면, 지난 13일에는 공사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무려 3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현재 도는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에 대해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공사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도로 확·포장 공사 자체를 무효화할 수는 없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삼나무 수림 훼손 최소화 방안 등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도 도시건설과 관계자는 "기본 안을 마련하는 데 최소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 데다 이를 바탕으로 한 의견 수렴 과정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행정을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향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는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대천~송당) 약 2.94㎞ 구간을 왕복 2차로에서 4차로로 넓히기 위한 것으로, 공사 과정에서 삼나무 915그루(총 벌채계획 2160그루)가 잘려나가 전국적으로 논란이 됐다.

비자림로는 지난 2002년 정부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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