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문재인 정부가 '쉼표가 있는 삶, 사람이 있는 관광'을 새 관광정책 비전으로 앞세우면서 '지역관광 활성화'를 큰 방향으로 내걸었다. 대표 관광지가 아닌 마을 관광 콘텐츠에 눈을 돌려 주민 주도형 관광 프로그램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양적 성장에 치우쳤던 제주 역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지역관광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뉴스1은 제주의 지역관광 현 상황과 향후 과제를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청정 자연은 제주 관광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1980~90년대 유명 관광지를 돌며 기념사진을 찍고 쇼핑만 하는 관광시장의 한계는 분명했다.

사드 보복 등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보기만 하는 관광'에서 '제주다움을 느낄 수 있는 관광'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차별성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올레길 걷기는 제주는 물론 전국의 관광트렌드를 바꾼 콘텐츠다.

'힐링' 바람과 맞물려 대규모 개발 없이 단순한 콘텐츠만으로도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동안에는 제주 색깔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관광지가 우후죽순 들어서도 양적 성장에 기대 그저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지만, '믿고 오는 제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관광 생태계의 재정비가 불가피하다.

◇ "가치 소비를 끌어내기 위해 지역민에 투자하라"

"올레길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관광지만 여행할 때는 알지 못했던 제주의 속살을 만나고, 걷는 이에게 감귤 하나 손에 꼭 쥐여주는 지역 사람들의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올레 개장 10주년을 맞이한 2017년,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은 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킬 수 있게 된 비결로 이같은 이유를 들었다.

새롭게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는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어떻게 보여줄 지를 고민한다면 충분히 관광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제주가 관광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요소들로 관광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겼다.

최근 여행 트렌드를 보면 과거 '가성비'를 쫓던 관광객들은 이제 무조건 저렴하게 떠나는 것보다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심리적 만족을 높일 수 있는 '가심비'를 중시하고 있다.

'가심비 높은 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 윤순희 ㈜제주생태관광 대표는 "제주관광 콘텐츠도 관광소비자의 변화된 심리를 자로잡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관광객들은 눈으로만 보기 보다는 그 자연이 갖고 있는 가치를 온전히 느끼는 체험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하례1리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효돈천 트래킹을 예로 든 윤 대표는 "관광객들은 단순히 풍광에만 놀라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에 또 감동하게 된다"며 "편의시설을 거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의 사람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3년째 에코파티를 진행하고 있는 고제량 (사)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 역시 '지역주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지역을 주민이 보존하고 주민 스스로 자연 브랜드를 활용한 관광을 펼쳐야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에코파티에 참여한 관광객들은 자연에 감동하고 특화된 음식에 감동하고 지역주민들에게 감동을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란수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 하드웨어만의 육성이 아닌 지역의 휴먼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지역의 고유 자원과 지역민 스스로가 관광주체가 될 때 차별화된 지역관광 활성화가 가능하다"면서 "관광생태계 기반을 육성할 수 있도록 지역의 자원과 스토리를 발굴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민이 공동체를 만들어 관광사업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베끼지 말고 재촉하지 말라"

"다른 곳에서 잘 하는 사례를 그대로 가져와선 안된다."

지역관광 콘텐츠 개발과 관련해 정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지역관광의 창조성과 차별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레일바이크가 성공하니 모든 지역에서 레일바이크 개발에 앞장서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는 "획일화된 관광상품 양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지역의 자원을 반영하지 않는 사례에 대한 지원이나 육성을 막아야 한다"면서 "아울러 창의적인 발상을 가로막는 계량화된 심사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안순 제주농어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 회장은 콘텐츠 개발은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산발적으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의 다양성은 간과하고 보여주기식 중심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며 "지역의 사람 자원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의료관광이니 웰니스관광이니 새로운 거대 프로젝트 중심으로 하는 게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도적으로 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텀업 방식으로 민간에서 하는 걸 패키지하고 상품화할 수 있는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조급한 성과를 얻고자 하지 말고 퀄리티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게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희 제주마을기업협의회 회장 역시 조급한 성과주의식 추진 방식을 경계하면서 "설령 실험에서 끝나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실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최소한 3년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또 "마을을 기반으로 지역주민들과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융복합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역단위로 융복합될 수 있는 협의체가 마을공동체를 엮어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제주관광공사는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도내 공공기관과 민간협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참여한 기관·단체만 15곳에 이른다.

과연 흩어져있던 움직임들이 모여 제주의 관광정책 방향인 '사람이 있는 관광, 관광으로 크는 제주'를 실현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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