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의 한 주택에서 만난 강정옥 할머니(100)는 텔레비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텔레비전에서는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탄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딸 조영자씨(65)의 손을 꼭 잡은 강 할머니는 카메라가 주민들의 모습을 비출 때마다 혹시나 동생 강정화씨(85)가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눈빛이 흔들렸다.

강 할머니는 지난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간 금강산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에서 남측 참가자 중 최고령자였다.

김대중 정부 때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차례가 오지 않았다가 북측에서 동생이 신청을 하면서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제주가 태풍 솔릭의 영향권에 들면서 비행기가 뜨지 못할 뻔 했지만 발걸음을 서두른 덕에 어렵사리 만남이 성사됐다.

1948년 돈 벌러 방직공장에 간다며 제주에서 육지로 떠났던 열다섯살 동생은 주름이 깊게 파인 여든다섯살의 할머니가 돼 있었다.

짧은 만남을 끝내고 기약없는 만남을 약속한 채 발길을 돌린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됐다.

TV를 통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지켜본 강 할머니는 "예전에는 서로 싸우기만 했는데 서로 안고 화해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면서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손에 꼭 쥐었다.

강 할머니는 "우리(이산가족 생존자)는 시간이 급한 사람들"이라며 "통일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남북에 떨어져 있는 우리들이 자주 만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고향인 제주에 동생을 꼭 한 번 데려오고 싶다는 강 할머니는 "이상가족 상봉 행사를 제주에서 열어달라고 대통령님께 편지를 쓸 생각"이라며 "날마다 만나면 좋겠지만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서 "그간 눈물로 세수만 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살아보고 싶다"며 "꼭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것만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꽃다발을 들고 문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주민들을 본 강 할머니는 TV 속에 동생 정화씨가 있는 것처럼 목놓아 이름을 불렀다.

"정화야, 보고싶다. 내 목소리가 작으난(작으니까) 안들리지. 막아젼(막아져서) 네가 안 보인다. 자식들 다 데리고 제주로 오라. 시간이 급하다. 또 보고싶다 정화야."

70년 만에 만남을 가진 뒤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 있었다.

북한에 다녀온 뒤로 매일 동생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강 할머니는 동생을 향한 마음을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여줬다.

"사진도 찌근거이(찍은거) 맨날 밤저(봤다). 울어질대도 막있저(울어질 때도 많았다). 제주도에 고치(같이) 왓시민이(왔으면) 잘도 졸건디(무척 좋을텐데) 막 섭섭하다. 나 다시 또 가시민(가면) 조켜마는(좋겠지만) 나이가 핫브난(많아서) 느가(너가) 오는 것이 조켜켜(좋을 것 같다)."

편지에는 동생을 향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났다.

동생 사진과 편지를 손에 꼭 쥔 강 할머니는 이후로도 한 동안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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