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자신들이 직접 서명하고 공동 발의한 안건에 대해 표결 직전 입장을 바꾸는 방식으로 본회의 통과를 무산시키는 촌극을 벌여 도민들을 실소케 했다.

제주도의회는 21일 제364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에서 '신화역사공원 등 대규모 개발사업장 행정사무조사 발의의 건'을 상정해 재석의원 34명(전체 의원 43명) 중 찬성 13명, 반대 8명, 기권 13명으로 부결했다.

해당 안건은 '대규모 개발사업장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업면적 50만㎡ 이상의 도내 대규모 개발사업장을 대상으로 인·허가 절차와 세제 감면 혜택, 사업승인 조건 이행 등의 적절성을 조사하는 내용이다.

조사 대상 조건을 충족하는 도내 대규모 개발사업장은 제주신화역사공원과 예래휴양형주거단지, 헬스케어타운 등이었다.

이번 행정사무조사는 지난 7월4일부터 8월6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발생한 제주신화역사공원 내 제주신화월드 오수 역류 사태로 촉발됐다.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11일 이에 대한 특별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2006년 도의회의 환경영향평가 동의 당시 333ℓ였던 제주신화역사공원 1인당 물 사용량이 도 승인 과정에서 136ℓ로 축소된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에 허창옥 부의장(무소속·서귀포시 대정읍)은 "상·하수도 원 단위가 변경된 사업장에서는 향후 제주신화월드와 같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며 재적의원 과반에 가까운 20명의 찬성 서명을 받아 이달 초 해당 안건을 공동 발의했다.

그러나 이날 본회의 표결 결과 찬성표를 던진 도의원은 13명에 불과했다.

표결 직전 제주참여환경연대가 안건 가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허 부의장이 제안설명을 통해 동료 의원들에게 안건 가결을 거듭 호소했음에도 공동발의자 7명이 반대·기권·불참 등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결국 해당 안건은 찬성표가 과반을 넘지 못하게 되면서 최종 부결 처리됐다.

복수의 의원들에 따르면 전날 의원총회에서 해당 안건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나 감사원, 도 감사위원회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허 부의장은 산회 직후 뉴스1 제주본부와 만나 "상당히 당혹스럽고 허무하다"며 "혁신의정을 하겠다는 도의회가 집행부의 거수기로 전락한 것 같아 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도민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에 거들어 도의회 의사담당관실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개가 원칙인 공동발의자에 대해 비공개 방침을 내린 상태다.

이를 두고 도의회 내부에서도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 도의회 의원은 "공동발의자를 비공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사실상 의회 전체가 의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의원으로서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지역 정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반대·기권표를 던진 의원들도 도민에 대한 책임정치를 사실상 내팽개친 것"이라며 "향후 기권표를 재석의원에 불포함하는 등 표결 기준을 보다 엄격히 하는 제도개선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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