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이 다 되어서야 형사의 꿈을 이뤘죠."

경찰의 날(10월 21일)을 이틀 앞둔 19일 서귀포경찰서에서 만난 김미경 형사(43·경위)는 어릴 적 드라마 '수사반장'을 보며 형사의 꿈을 키웠다며 소녀처럼 웃어보였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첫 여성총경까지 나오며 여경에 대한 '유리천장'이 깨졌다곤 하지만, 강력범죄를 다루는 형사과에서 여경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도내 3개 경찰서별로 형사과에 배치돼 근무하는 여경이 있긴 하지만 내근을 하며 지원업무를 담당할 뿐 현장을 누비는 여경은 김 형사가 유일했다.

18년 전 경찰에 입문한 김 형사는 줄곧 지원업무만 하다 2014년부터 서귀포경찰서에서 외근 형사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서귀포경찰서 최초 여형사'라는 수식어를 안고 현장을 누빈 지도 벌써 5년째다.

김 형사는 "외근 형사를 하고 싶어도 지원만 한다고 무조건 되는 게 아니었다"며 "여경과 함께 일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지원업무를 통해 수사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는 김 형사는 2인1조 밤샘 잠복근무는 물론 피의자 검거까지 여느 형사들과 다름없이 역할을 해냈다.

2016년 서귀포 안덕면에서 발생한 중국인 여성 살인사건 당시 약 한 달간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다.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쌍둥이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그래도 일에 전념할 수 있던 이유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경찰 동료의 소개로 만난 남편은 경찰 업무에 대한 이해심이 넓었고, 함께 사는 시어머니 역시 육아와 집안일을 함께하며 형사 며느리를 향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의 빈자리를 서운해할 법도 하건만 올해 14살이 된 쌍둥이 자녀는 엄마가 형사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늦은 귀가나 주말 근무를 탓하지 않았다.

경찰조직 내에서 '여자는 이래서 안돼'라는 선입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고,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들이 더욱 부각됐다.

살인사건으로 엄마를 잃게 된 한 여자아이를 돕기 위해 주기적으로 형사들끼리 십시일반 모은 돈을 전달하는 것도 김 형사의 몫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에게 그는 '이모'로서 말을 건넸다.

여성 피의·피해자 수사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인권문제를 챙기는 것도 김 형사의 몫이다. 조사는 물론 유치장이 있는 제주시까지 3시간가량 걸리는 호송도 김 형사가 챙긴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모든 사건을 챙길 수 없기 때문에 수사과 여경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여형사가 없는 다른 경찰서의 경우에는 매번 다른 과 여경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지난 8월부터 서귀포경찰서에 발령 온 조다솜 형사(24·순경)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조 형사는 대구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올해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경찰일을 시작했다.

서귀포 중동지구대에서 근무한 지 두달 가량 됐을 무렵, 양호철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부터 형사과에서 근무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지난 5년간 김 형사을 지켜보며 여형사의 필요성을 느낀 양 과장이 충원이 필요하다고 느껴 내린 결정이었다.

배우 고현정이 여경으로 나온 드라마 히트를 보며 형사의 꿈을 키웠다는 조 형사는 이른 제안에 놀라면서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꿈을 못 이룰 것 같아서 바로 승낙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6일부터 형사2팀에서 근무를 시작한 조 형사는 "방금도 절도사건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고 오는 길인데 아직도 (형사가 된 게) 실감이 안난다"며 "김 형사님이 일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롤모델로 삼게 됐다"고 들뜬 어조로 말했다.

최근에는 단순 변사로 묻힐 뻔한 모텔 노숙자 사망사건이 부검 결과 살인사건으로 전환되자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곳곳을 다니며 CCTV를 추적하기도 했다.

조 형사는 "발로 뛰는 걸 넘어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다"고 열의를 보이며 "범인도 잡고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주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조 형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 형사는 "다그치기 보다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것만으로 사건이 해결되기도 한다"며 "인간미 넘치는 형사이고 싶다"고 바랐다.

이를 위해 범죄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 형사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심리를 파악해서 조사 과정에서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고 싶다"며 "법집행 과정에서 우리(경찰)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려는 제주의 단 두 명뿐인 여형사들의 강단 있는 눈빛 속에서 따뜻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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