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갈치만 잡았는데 가장 피크(절정기)에 갈치를 잡지 말라니 말이나 됩니까?”

정부가 제주지역 어업인들과 지자체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말 국무회의에서 7월 한 달간을 갈치 포획금지기간으로 정하는 내용의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갈치 어획량이 매년 줄어들자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다.

하지만 당초 제주도가 금어기 적용 제외를 요구한 근해연승·근해채낚기·연안복합 어업 중 2개 종류만 받아들여지면서 당장 올해부터 금어기를 적용받게 된 근해연승어선 어민들이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3일 낮 12시,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에 정박돼 있는 근해연승어선 앞에 선 선주들은 번갈아 한숨을 내뱉었다.

신광석(66·제주시 한림읍)씨는 “갈치 어획량이 늘어나는 7월 내내 갈치 조업을 하지 못하면 선주를 비롯해 선원들, 이들의 가족들까지 생계가 막막해진다”며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놀고 싶지 않아도 놀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신씨는 이어 “그 기간 동안 다른 어종을 잡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물이 아닌 낚시로 갈치를 잡기 때문에 어선 자체가 거기(낚시)에 맞춰져 있다”며 “금어기 동안은 꼼짝없이 항구에 묶어놔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선주인 김수헌(66·제주시 한림읍)씨는 “30여 년간 갈치만 잡을 수 있게 훈련이 돼 있기 때문에 휴어기라고 해서 새로운 어종을 잡는 건 불가능하다”며 “단속에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갈치 조업을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한 번 출항하면 30~40일 정도 가는데 한 척에 10~11명 정도가 탄다”며 “조업에 나서지 않아도 선원들에게는 월 최저임금 160만원 이상을 줘야하는데 금어기 때는 선주들이 적자를 보며 줘야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제주지역 어업인들이 갈치 금어기 운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 어선주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문(58·제주시 한림)씨는 “제주 갈치근해연승어선들은 정부의 수산자원 정책보다도 한 발 앞서서 치어(알에서 깬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물고기)들이 올라오는 시기인 매년 5월을 자율 휴어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해가 갈수록 갈치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어민들 스스로 금어기를 설정하게 됐다”며 “게다가 우리는 연중조업일수의 70% 이상을 제주근해가 아닌 일본 및 중국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조업을 하는데다 선별적으로 성어(다 자란 물고기)만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제주지역 어업인들은 지난해 7월 진행된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설명 및 의견수렴 회의’에서 어린고기 남획 방지를 위해 갈치 조업 금지기간을 기존대로 5월로 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금어기가 7월로 지정되자 김씨는 “정부에서 제주만 5월로 정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육지부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며 “육지부 사정이라는 게 결국 기업형 어선들의 사정 아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씨는 “어족자원 고갈의 주범인 대형선망이나 저인망어선의 경우 갈치만 잡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어종들을 잡는데 7월이면 장비 수리를 위해 쉬는 경우가 많다”며 “제주는 육지부와 사정이 다르니 고려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제주는 전국 갈치 위판량의 37%인데 생산금액은 80%에 이른다. 이 같은 통계만 봤을 때도 우리가 큰 고기만 잡는다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느냐”며 “대형선박들은 치어까지 다 잡아들여 양식사료 등으로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박된 선박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던 신광석씨는 “이번 개정안은 수산자원 보호가 아니라 기업형 어선들 특혜를 위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신씨는 “어종을 가리지 않고 싹쓸이 조업에 나서는 대형쌍끌이, 대형선망, 기선저인망, 근해안강망 어선에게는 금어기 중에도 갈치가 어획량의 10%를 넘지 않으면 조업을 허용했다”며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이어 “가만히 앉아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과태료를 낸다고 해도 생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7월에 조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며 “제주도도 어업인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어업인들의 사정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은 정부에 개탄하던 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하염없이 먼 바다만 응시했다.

조만간 시행령이 공포될 것으로 예고된 가운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는 어업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제주도 해양수산국 수산정책과 관계자는 “당초 금어기를 설정한다고 했을 때 낚시로 갈치를 잡는 어선에 한해서는 5월로 조정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며 “하지만 근해연승어선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우리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갈치의 주 산란기인 7월에 금어기를 설정해야 갈치 자원보호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일단은 성어를 잡는 그물어법이나 치어 보호정책부터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직 시험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우선순위를 매겨 단계별로 금어기를 지정해야 하는데 당장 절정기에 조업 자체를 못하게 하면 되겠느냐”며 “행정기관으로서 어민들을 설득을 해야 하는데 논리가 없어 막막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연구 결과 치어뿐만 아니라 성어도 보호한다는 확신이 선다면 내가 욕을 먹더라도 어민들에게 설명을 하겠는데, 해수부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대답을 피하더라”며 “시행령이 공표되면 어업인들과 함께 부당성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부득이하게 근해연승어선에 대해 7월에 금어기를 지정해야 한다면 별도의 금지구역을 정해 그 기간 동안 조업가능 수역에서 조업이 가능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제주지역의 지난해 갈치 위판금액은 전체 도내 위판금액의 49%(1785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갈치 위판량 1만2704톤 가운데 5월에는 자율 금어기 시행으로 인해 114톤이 위판됐으며, 어획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7월에는 1006톤(136억9200만원)이나 위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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