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전국 첫 영리병원을 조건부 허가해 숙의형 민주주의로 주목받았던 공론조사가 선거용 정치적 판단에 불과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원 지사는 선거를 앞둔 지난 3월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국제병원을 공론화 절차를 밟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공론화를 통해 도민사회의 상반된 의견을 조정하고 도민들이 공감하는 공론을 형성해 자치역량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지자체 차원의 첫 공론조사라는 점에 의의를 뒀다.

이미 사업승인까지 받은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여부가 공론조사 대상인지는 초반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제주도 숙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사업계획이 확정돼 추진 중에 있거나 이미 종료된 사업'은 숙의형 정책개발에서 제외하고 있어서다.

2차례의 여론조사와 찬반 토론 등 수개월의 논의 끝에 공론조사는 개원 불허를 권고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선거에 당선된 뒤 원 지사는 공론조사를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혀왔다. 지난달 15일 도의회 시정연서에서는 "녹지국제병원 불허 권고를 겸허히 수용하되 지역주민, 이해관계자, 도의회 그리고 정부와 합리적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며 '수용'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던 원 지사는 지난 3일 관계 공무원들과 함께 녹지국제병원을 놓고 회의를 개최한데 이어 병원과 인근지역 주민들을 잇따라 만나며 언행에 변화가 감지됐다.

원 지사와 공무원들의 회의에서는 공론조사를 존중해야 하지만 행정 신뢰도와 지역경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이틀 뒤 조건부허가를 발표했다.

원 지사 스스로 "자치역량을 높이는 계기"라고 치켜세운 공론조사를 뒤집은 결과다.

'외국인 한정'이라는 조건을 넣기는 했지만 2015년 보건복지부 사업 승인 당시부터 외국인 진료 중심이었다. 사실상 3년 전 사업승인 그대로 허가를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공론조사는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현안인 영리병원을 선거 이후로 미루기 위한 전략 이상은 아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원 지사는 영리병원 이외에도 자본검증 중인 오라관광단지, 비자림로 생태도로, 대중교통 우선차로제 확장 등 찬반 여론이 있는 사안은 늦추거나 보류하는 정책을 펴 도의회에서 '결정 콤플렉스'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받은 바 있다.

앞서 공론조사위원회의 도민참여단 설문조사 결과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선택한 비율이 58.9%로 '개설을 허가해야 된다'고 선택한 38.9%보다 20.0%p 더 높았다는 점에서 도민 다수 여론에 등을 돌렸다는 비판도 있다.

반대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내 "투자자와의 신뢰성을 따질 문제였다면 왜 공론조사로 막대한 세금을 써가면서 몇 달 동안 숙의 과정을 거치게 했는지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원 지사는 이날 조건부 허가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행정은 (공론조사로) 미치는 영향과 미래도 감안해 현실성 있고 책임질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론조사 결정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방안을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안이 없어 불가피한 차선의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지사로서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고 도민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며 "비난은 달게 받겠고 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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