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노형동에 직장을 둔 이주민 김모씨(36)는 '칼퇴(정시 퇴근)'를 할 수 있는 데도 매일 오후 7시쯤 느지막이 회사를 나선다. 시속 10㎞도 안 되는 속도로 마비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할 바에 차라리 잔업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읍·면·동으로 가야 좀 한적하지, 시내는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제주 도심이 교통지옥으로 치닫고 있다. 제주로 밀려드는 인구, 관광객과 함께 자동차, 렌터카도 덩달아 급증한 탓이다.

5일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1년 25만7154대에서 2013년 33만4436대, 2015년 43만5015대, 2017년 50만197대, 올해 10월 말 기준 54만5390대로 8년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가운데 렌터카 등록대수도 2013년 1만6423대에서 매년 3000~5000대씩 늘어 올해 9월 말 기준 3만3383대로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이로 인해 각종 기록도 경신되고 있다. 올해 10월 말 기준 인구·세대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각각 0.554대·1.341대, 지난해 하루 평균 교통량 증가율은 8.8%(2016년 1만430대·2017년 1만1351대)로 모두 전국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교통사고 발생건수도 2007년 3136건에서 2017년 4378건으로 최근 10년간 39.6%(1242건) 늘었고, 2016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부상자도 1160명으로 전국 평균(653명)을 크게 웃돌았다.

◇ '원인자 부담' 렌터카 총량제·차고지 증명제·교통유발부담금제
 

이에 제주도는 교통체증 해소와 교통수요 관리 차원에서 원인자 부담 원칙을 적용,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함께 렌터카 총량제와 차고지 증명제, 교통유발부담금제를 동시 추진하고 있다.

지난 9월 제주에 전국 최초로 도입된 렌터카 총량제는 제주 렌터카 적정대수가 2만5000대라는 연구결과에 따라 올 연말까지 3500대, 내년 상반기까지 3500대 총 7000대의 렌터카를 자율 감차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도에 따르면 현재 렌터카 업체 105곳 가운데 감차계획서를 제출한 업체는 65곳(61%), 총 감차계획 대수는 1901대(27.1%)에 불과한 실정이다. 감차 규모가 작은 것은 해당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탓이다. 1000대 이상의 렌터카를 보유한 대형업체들은 짧은 감차기간과 무보상 등에 대한 불만으로 '버티기'에 돌입한 눈치다.

이에 도는 내년 1월 자동차대여사업 수급조절위원회를 열고 운행 제한, 감차기간 연장 등 대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최근 관련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면서 접점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고지 증명제는 차를 구입하거나 주소를 변경할 경우 주차공간을 반드시 확보하도록 하는 제도로, 2007년 2월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 라면 2010년 1월에 이미 도 전역 전 차종에 제도가 적용돼야 했지만, 현재 이 제도는 제주시 19개 동(洞)지역 중형차 이상에 한해 부분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의회가 준비 부족과 도민 불편 등을 이유로 도의 관련 조례 개정안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결국 확대 시행 시점은 당초 계획에서 12년이나 미뤄진 2022년 1월로 정해진 상태다.

그러나 주차난이 심각한 제주시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제도를 확대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희범 제주시장은 지난달 28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차고 증명제의 강력한 추진이 없으면 주차문제는 해결하기 힘들다"고 항변한 바 있다.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교통정비지역에 도입되는 교통유발부담금제는 연면적 1000㎡ 이상 시설물에 교통혼잡 유발 정도에 따른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도는 2000년과 2009년, 2014년, 올해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옛 제주시의회와 도의회의 반대 등으로 실패해 현재 전국 17개 시·도 도시교통정비지역 가운데 유일하게 28년째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박원철 도의회 환경도시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도의 관련 조례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건물주에게 부과한 부담금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면서 임대료가 상승할 수 있다"며 "결국 생계형 소상공인의 피해만 커질 것"라며 보류 결정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 '도의회 책임론'…전문가들 "도·의회 합의해야"
 

도의 교통정책이 공전을 면치 못하자 도민사회에서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1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달 26일 성명을 통해 도의회 책임론을 제기하며 도의회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성며에서 "도의회가 제도의 취지를 명확히 파악했다면 도의회의 검토 내용을 반영한 조건부 의결 등을 내렸어야 한다"며 "결국 교통문제를 유발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대형 업체들이 또다시 면죄부를 얻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단체는 이어 "제주의 교통문제는 단순히 교통체증, 주차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한 물리적 피해, 배기가스 배출로 인한 오염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며 "도의회는 대형 업체의 눈치를 보며 도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도와 도의회가 보완적 대안과 함께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손상훈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교통문제가 날로 심각해 지고 있고, 관련 제도를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모아진 만큼 도와 도의회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송규진 제주교통연구소 소장도 "그간 도의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감스럽지만 도 역시 도의회를 더 설득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도와 도의회가 함께 전향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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