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이 발생한 지 71년 만에 사법부가 군법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7일 정기성 할아버지(97) 등 4·3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군법회의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공소기각이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군법회의에서 수형인들에게 적용된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린실행죄가 근거가 없다고 보고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제갈창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며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 등 수형생존인 18명은 제주 4·3 당시 성명불상의 군인들과 경찰에 의해 체포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2017년 4월 19일 법원에 군사재판 재심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 사이 군·경에 의해 제주도 내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육지의 교도소로 이송된 뒤 최소 1년에서 최대 20년간 수형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구금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수형인 명부, 범죄·수사경력회보 내지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만 있을 뿐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엉터리 처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였다.

고심하던 재판부는 이듬해 2월부터 5차례 4·3수형인들의 심문기일을 갖고 9월 3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재심의 근거가 되는 유죄 확정 판결의 직접 자료는 없지만 이들이 교도소에 구금됐다는 정황이 확인됐기에 가능했던 결정이다.

재심 개시 결정으로 군법회의에서의 유죄 판결은 무효가 됐고, 이유도 모른 채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들은 같은해 10월 29일 처음으로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의 특정과 입증을 해야하는 검찰은 이례적으로 피고인 심문을 통해 공소사실 특정에 나섰지만 결국 입증하지 못했다.

이에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아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며 공고기각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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