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4·3수형인) 18명에 대한 공소를 기각한다."

17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가 4·3생존수형인 18명의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자 곳곳에서 환호와 울음이 터져나왔다.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7월 사이 군·경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옥살이를 한 억울함이 씻기는 순간이었다. 햇수로 장장 71년이나 걸렸다.

재심 청구 소송을 주도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청중석 가장 뒤에 서서 눈시울을 붉혔다.

수형인들을 대변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도 재판부에 판결에 청중석에 있는 수형인들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보였다.

◇ 양동윤 "드디어….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년째 제주4·3 생존 수형인 진상규명에 힘쓰고 있는 양동윤 대표는 떨리는 목소리로 "4·3의 역사 정의가 실현됐다"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돼 기쁘다"고 크게 환영했다.

이어 그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빨갱이' '폭도'라는 이념의 덫에 갇혔던 제주도민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란다"며 소망을 전했다.

양 대표가 있는 4·3도민연대는 1999년 출범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이 제정된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의 형무소를 순례하며 진혼제를 올렸다.

4·3 당시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양 대표는 당시를 돌아보며 "오랫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어 추모만 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4·3도민연대는 2013년 4·3 군사재판 수형인 명부에 등재된 2350명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 이듬해 4·3 수형 생존자 모임을 발족시켜 5년간 이번 재판을 준비했다.

양 대표는 "사실 그동안 책임 있는 기관들의 도움이 없어 시간과 재정적인 면에서 힘든 점이 많았다"며 "4·3 생존 수형인들의 의지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가 나와 마음이 조금은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2차 재심도 준비해야 하고, 국가의 잘못이 명백히 인정되면 형사 소송도 제기해야 한다. 미진한 논의로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4·3특별법 개정안 통과에도 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바쁜 마음을 전했다.

양 대표는 "4·3의 완전한 해결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진상규명이다. 이는 4·3의 역사가 바로서고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되는 길"이라며 "정치권을 향한 목소리가 많은데 이제는 우리 자신도 한 번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 임재성 "군법재판 무효 판결 동력 삼아 4·3특별법 개정해야"

'불가능한 재판'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재심 개시 결정에 이어 공소기각 판결까지 이끌어 낸 임재성 변호사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임 변호사가 4·3재심청구사건을 맡게 된 건 2015년 같은 사무실에 있던 장완익 변호사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듬해 제주를 찾아 도민연대를 만난 임 변호사는 "죽기 전 법정에서 무죄를 확인하고 싶다"는 수형인들의 간절한 요청에 국가배상소송 대신 재심을 청구하기로 결정했다.

온갖 자료를 모으고 수형인들의 진술을 일일이 확인한 끝에 2017년 4월 재심을 청구했다. 4·3사건 발생 69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첫 형사재판 요구였다.

임 변호사는 수형인들이 90세 언저리에 이르러서야 권리를 구제받게 된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에 따르면 정기성 할아버지(97)는 1960년 군사재판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목포형무소에 재심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양근방 할아버지(86)는 2008년 재심을 받기 위해 변호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임 변호사는 "거창하게 4·3 전국화·세계화를 얘기했지만 정작 살아계신 수형인 30여명에 대한 권리구제도 하지 못했다"며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수형인이 희생자 범위로 들어온 게 2007년인데 12년이 지나도록 다들 방기하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어렵사리 재심이 열리게 됐지만 정기성 할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법정에서 증언도 하지 못했다"며 "10년이라도 더 빨리 진행됐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임 변호사는 앞으로 타지에 있는 남은 10여명의 생존자뿐 아니라 고인이 된 수형인들의 재심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숨진 이들은 진술을 확보하기 어려워 재심을 개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에 임 변호사는 '4·3특별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530명 중 가장 쉬운 재심을 통과했다. 소를 제기한 사람이 불법구금됐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고인분들은 재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을 동력 삼아 특별법 개정으로 일괄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불법군사재판에 대한 원천무효 선언 등이 담긴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2017년 12월 발의됐으나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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