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이 발생한 지 71년 만에 사법부가 군법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들에게 사실상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7일 4·3수형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군법회의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공소기각이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1948~1949년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린실행죄로 국법회의에 넘겨진 이들의 공소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고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제갈창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며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 판결문 없는 재심 재판, 어떻게 이뤄졌나
 

80~90대로 이뤄진 수형생존인 18명은 제주 4·3 당시 성명불상의 군인들과 경찰에 의해 체포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2017년 4월 19일 법원에 군법회의 재심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 사이 군·경에 의해 제주도 내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육지의 교도소로 이송된 뒤 최소 1년에서 최대 20년간 수형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구금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수형인 명부, 범죄·수사경력회보 내지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만 있을 뿐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엉터리 처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였다.

고심하던 재판부는 이듬해 2월부터 5차례 4·3수형인들의 심문기일을 갖고 9월 3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재심의 전제요건인 '유죄의 확정 판결'의 직접 자료는 없지만, 당시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고 그에 따라 교도소에 구금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수형인들의 일관된 진술을 토대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재심 사유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재심 개시 결정으로 군법회의에서의 유죄 판결은 무효가 됐다.

◇고개 숙인 검찰…법원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다" 위로
 

2018년 10월 29일, 70년 만에 족쇄를 풀기 위한 정식 재판이 이뤄지게 됐지만 18명 중 2명은 건강상 이유로 법정에 서지 못했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의 특정과 입증을 해야하는 검찰은 이례적으로 피고인들에 대한 심문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존재하지 않는 공소장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12월 11일 공소장 변경 허가신청을 통해 공소사실을 복원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상적 구성요건을 그대로 적거나 4·3에 관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사후적으로 판단해 재구성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2018년 12월 1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공소장 변경 신청이 불허된 이상 공소사실을 특정했다고 볼 수 없다"며 스스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기각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수형인들을 향해 "피고인들의 체험을 듣고 기록과 문헌을 검토하는 동안 전에 몰랐던 4·3의 역사적 의미와 도민들에게 끼친 영향을 깊이 고민하게 됐다"며 "너무 늦었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버텨낸 모든 분들의 아픔이 치유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군법회의 심판 회부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점을 강조하며 "피고인들에 공소제기 절차가 무효"라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과거 국방경비법상 군법회의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법무부 장교 중 예심조사관'에 의한 '완전 공평한 예심조사'를 거쳐야 하고, 회부할 경우 피고인에게 기소장 등본을 송달해야 한다.

하지만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이 절차가 지켜진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단기간 다수의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국법회의에 회부했을 경우 제대로 된 절차가 이뤄졌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어렵고,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에서도 이같은 내용이 기재돼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소기각 판결 사유를 밝힌 제갈창 부장판사는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다"고 말문을 연 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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