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에 가루눈이 날리던 17일 오전 제주 제주시 회천동 회천매립장.

출입 초소를 지나 양옆으로 가시덤불이 우거진 매립장 입구에 들어서자 이내 쾨쾨한 냄새가 코를 물씬 찔러 왔다.

고개를 들자 높이가 10m 가까이 되는 거대한 언덕들이 눈앞에 다가왔다. 햇수로 27년째 제주시 전역 각 동(洞)에서 배출된 쓰레기들을 켜켜이 쌓아 올린 것이다.

누구나 접근을 꺼려하는 쓰레기 매립지이다 보니 인적은 매우 드물었다. 불연성 쓰레기를 실은 1톤 트럭 1~2대만 조용히 오갈 뿐이었다. 취재 차 이곳을 배회하는 내내 내내 먹이를 찾는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가 유독 요란하게 들렸다.

평탄화된 각 언덕 위에는 가래떡처럼 뽑아 놓은 압축 쓰레기 뭉치들이 5m 높이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품질이 낮아 '무늬만 고형 연료'들이다. 까마귀들이 헤집어 놓은 듯 터진 뭉치 안에는 축축한 폐비닐이 가득했다.

회천매립장 옆 제주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소각장인 이곳에는 미처 회천매립장에 매립되지 못한 소각재가 마치 화산처럼 쌓여 있었다.

제주시 환경시설관리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회천매립장의 매립률은 99.9%로, 총 매립용량 231만9800㎥ 가운데 불과 2300㎥만 사용 가능한 실정이다. 사용기한은 오는 10월까지지만 이대로는 다음달 13일이면 완전 만적에 이른다.

제주시 환경시설관리소는 임시방편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회천매립장 내 혼합 쓰레기 반입을 잠정 금지하고 있다. 불연성 쓰레기만 반입·매립해 만적 시점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회천매립장의 하루 평균 쓰레기 반입량은 지난해 188㎥에서 올해 54㎥으로 급감했지만 이의 반사작용으로 최근 시내 곳곳에서는 각종 쓰레기가 야적되고 있다.

이날 찾은 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사업장 한편에는 재활용되지 못한 건설폐기물 잔재물(혼합 쓰레기)이 5m 넘게 쌓여 있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행정 협조 차원"이라면서도 "장기화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뒤늦게 지난해 12월 말부터 회천매립장 내 반입이 금지된 슬러지(하수 처리과정에서 생긴 침전물) 역시 대형 포대에 담겨 사용이 종료된 서귀포시 안덕매립장이나 중간처리업체 사업장에 쌓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제주시 환경시설관리소는 지난 15일 회천매립장 옆 재활용 선별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기계 끼임사고로 재활용 선별장 2곳의 사용이 전면 중단되자 시내에서 수거한 재활용품을 제주시 구좌읍 동부매립장 또는 중간처리업체 사업장에 분산 야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최근 혼합 쓰레기 반입 금지로 선별해야 하는 재활용품이 많이 늘었다. 재활용 선별장에 반입되는 재활용품은 하루 평균 40㎥ 규모"라며 "최대한 빨리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회천매립장 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도내 주요 매립장의 매립률은 제주시 한림읍 서부매립장 101.6%, 제주시 구좌읍 동부매립장 98.9%, 서귀포시 색달동 색달매립장 94.6% 등으로 대부분 이미 용량을 넘어섰거나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유일한 탈출구는 2016년부터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25만8700㎡ 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다. 준공 시 총 200만㎥를 매립할 수 있는 매립시설과 하루 500㎥을 소각할 수 있는 소각시설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준공시점이다. 지난해 11월1일부터 12월17일까지 47일간 이뤄진 동복리 주민들의 단체행동으로 당초 오는 26일이었던 매립시설 준공시점은 3월29일, 오는 10월4일이었던 소각시설 준공시점은 11월30일로 잠정 연기된 상태다.

그러나 다행히 도가 매립시설 가운데 조기 준공된 1구역(불연성 쓰레기)과 6구역(소각재)을 이달 말 우선 개방하기로 해 사상 최악의 쓰레기 대란은 면하게 됐다.

도 관계자는 "현재 2~5구역(매립시설) 공사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며 "공사가 다소 지연된 만큼 하루 속히 공사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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