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면 강원대학교 춘천 캠퍼스 한쪽에 희한한 시설이 들어선다. 1000여 평의 캠퍼스 부지에 형형색색의 콘테이너 40여 개를 배치하여 ‘컨테이너 창업 촌’을 만든다. 지금 터 고르기 공사가 한창이다.

요즘 전국 어딜 가나 컨테이너 하우스가 자주 눈에 띈다. 대개 주택과 미니 회사 사무실로 쓰이지만, 제주도 같은 관광지에서는 여러 개를 포개어 제법 모양 나게 펜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 캠퍼스에 컨테이너 촌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대학은 높고 화려한 현대식 건물로 캠퍼스를 채워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 강원대학교는, 가난한 사업가들이 회사를 창업하면서 공터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사무실로 쓰듯이, 이렇게 많은 컨테이너를 교정에 배치하는 것일까.

강원대학교도 컨테이너를 일종의 창업 사무실로 만들려 하고 있다. 컨테이너 하나의 면적이 5평이다. 이 컨테이너 방을 창업동아리와 입주 기업에 제공하고, 몇 개의 컨테이너는 공용 사무 기기실로 쓰게 된다. 이 컨테이너 촌은 학교 안 사람들만 쓰는 게 아니라 지역의 창업자들에게도 개방한다.

김헌영 강원대 총장의 안내로 일명 ‘대추나무골’ 공사 현장을 구경했다. 컨테이너창업촌 프로그램은 야심차고 구체적이었다. 8억 원이 소요되는 컨테이너시설은 2단계공사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미 23억 원을 들여 작년에 완공한 1단계 건물은 일부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건물도 외형은 컨테이너 모양을 띠고 있으나 세미나실, 강의실, 공연 전시실, 사무 기기실, 네트워킹실, 시작품 제작실이 조화롭게 배치됐다. 특히 3D프린터와 레이저 절단기 등 첨단 기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원대학교는 이 컨테이너 창업촌에 ‘KNU스타트업큐브’(K-Startup Cube)라는 이름을 붙였다. 줄여서 ‘K-큐브’라고 불린다. 7월 컨테이너 촌이 완공되면 K-큐브는 창업 허브가 되어 학교, 기업, 지역사회가 창업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실현하는 열린 공간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반 창업자가 이곳에 입주하여 각종 시설을 공유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기업의 꿈을 이루는 곳이 되는 식이다.

강원대학교는 ‘K-큐브’ 속에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4차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3D프린터, 레이저절단기 등 장비와 시설을 대여하고 시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시설이 될 것이다.

‘메이커스페이스’는 여러해 전 독일 뮌헨대 공대가 일종의 하이테크 공방(工房)을 만들고 붙인 이름이다. 뮌헨대는 이 시설을 공공에 개방하여, 각종 기계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원들에게 창업컨설팅, 지식 정보, 훈련 서비스를 해준다. 강원대의 ‘K-큐브’프로그램에는 메이커 스페이스 아이디어가 많이 녹아 있는 것 같다.

‘K-큐브’에 쏟는 김헌영 총장의 열정은 자동차를 전공한 그의 공학자적 기질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K-큐브에 대한 김 총장의 비전은 기계공학 분야를 넘어서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그는 영화 같은 문화 관련 창업기업 몇 개가 컨테이너를 차지하고 들어왔으면 하고 바란다.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달라지는 국제질서와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혁신으로 학생 교육에 혼돈을 겪고 있는 중이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일자리와 관련하여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 방황하고 있으며, 대학 교수들도 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폭과 속도가 대학생과 교수가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히 변동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교육부는 대학도서관을 과거의 ‘열람실’에서 탈피하여 토론, 협업, 창업 중심 공간으로 바꾸는 ‘제2차대학도서관진흥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조치가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대학의 고민을 얼마나 덜어줄지 의문이다. 이 정도의 조치라면 대학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이미 교육부가 지원했어야 했던 일이 아닐까.

강원대학교에서 K-큐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40~5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학생들이 허름한 창고나 차고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구상하고 만들었던 실리콘밸리의 초기 모습이 떠올랐다. 21세기 들어 한국 기업이나 대학도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스타트업 모델을 젊은이들의 창의력과 결합하는 시도를 적잖이 하고 있다.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그렇게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대기업이 꽉 쥐고 있는 산업 생태계에서 젊은 창업자들이 자랄 틈이 없고, 둘째 정부나 대기업이 지원하는 창업교육과 훈련이 창의력과 절실함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을 발굴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원대학교의 K-큐브 프로그램은 단기 실적에 연연하여 조급하게 추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과성적이 좋은 젊은이들보다는 도전정신, 창의력, 열정을 가진 젊은이 모여들게 했으면 싶다. 밤을 새우며 생각하고 토론하고 만들다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오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강원대학교의 이 실험이 서울중심의 우리 대학 문화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프로그램 구상단계의 초심에 집중해서 자원을 배분하고 참여자들이 정성을 쏟는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10년 후 강원대학교의 ‘컨테이너 창업촌’이 어떤 모습이 될까. 활기찬 메이커 스페이스가 될까, 아니면 녹슨 컨테이너의 공동묘지가 될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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