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제주지역 농협 조합장 A씨(66)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나면서 여성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지만 검사가 범죄사실을 특정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라는 게 1‧2심 재판부의 공통된 의견이었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력이 도마에 올랐다.

게다가 2심 재판부가 인정한 피고인의 알리바이 증거가 추측성 증거에 불과해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검찰이 자존심 회복을 내건 상고에 나설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실형→무죄 뒤집힌 이유는…재판부 "검찰 증명 노력 부족"
판결문에 따르면 A조합장은 2013년 7월 25일 조합 입점업체 업주 B씨(53·여)를 불러내 제주시 아라동 자신의 과수원 건물에서 간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A조합장은 "모든 권한이 나에게 있다. 입점 관련 공개입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성관계를 요구하고 이후에도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3년이나 흐른 2016년 11월 17일에야 고소가 이뤄지면서 경찰은 수사에 애를 먹었으나, B씨가 "당시 A조합장이 출장에서 돌아온 날이었고 손주 500일 파티가 있다고 했다"고 진술하면서 간음 범행일자를 특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A조합장은 "손녀딸 출생 500일 기념잔치가 있어서 지방출장을 다녀온 건 맞지만 곧장 집으로 가 가족들과 잔치를 했다. 같은 날 피해자를 만난 적도 없다"며 운전기사와 딸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제주지법 형사4단독 한정석 판사는 'B씨가 피고인의 사적인 일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점', '강씨가 당시 일정을 구체적으로 기억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운행일지만 보고 진술한 점', '기념잔치 사진에 피고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징역 8월을 선고했다.

다만 강제추행 부분에 대해서는 "검사가 피해자 진술 외에 범행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는지 의문"이라며 구체적인 사실 적시 부족 등을 이유로 공소를 기각했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의 이의 제기로 이뤄진 항소심에서 재판부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파티 때 촬영된 동영상을 추가 증거로 제출받은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오후 9시30분 손녀딸이 어떤 인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데 그 인물이 피고인이라는 주장을 배척하기 어렵다"며 A조합장이 주장한 알리바이를 인정했다.

B씨는 "이날 오후 8시40~50분쯤 과수원에 도착해 40분 가량 이야기하다 간음 피해를 당한 뒤 오후 10시 전에 나왔다"고 진술했지만, A조합장이 오후 9시30분에 집에 있었으므로 B씨의 진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당시 A조합장이 반팔옷을 입은 것으로 기억한다는 B씨의 진술에 대해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던 까닭에 정장 차림으로 공항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므로 곧바로 만났다면 정장차림이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판시했다.

B씨의 진술에 대한 증명력 부족도 지적했다. B씨는 깜깜한 과수원에서 어떻게 차를 돌려 나갔냐는 피고인측 변호인 질문에 차량 내 후방카메라와 센서가 있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B씨가 운전했던 2000년식 EF소타나 LPG차량에는 해당 기능이 장착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는데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B씨를 위력으로써 간음했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엉뚱한 알리바이 인정 납득 못해"…검찰 상고 촉구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B씨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오목조목 반박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B씨는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성관계를 하게 됐지만 아픈 남편과 자식들에게 알려질까봐 참았다"며 "그런데 3년 뒤 판매품목 문제로 갈등을 빚던 중 A조합장이 남편에게 따로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해 고소를 결심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A조합장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자살 시도를 하자 자신의 휴대폰을 버렸다. 이 내용은 검찰 심문조서에도 나와 있다"며 "내가 명예훼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증거를 없앤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경찰·검찰조사에서 A조합장은 분명 내 차를 타고 같이 과수원에 간 사실을 인정했는데 왜 재판과정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는 지 모르겠다"며 "경찰조사에선 500일 때 손녀딸이 서울에 있어 제주집에 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재판과정에선 함께 있었다고 말을 바꾼 것도 수상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3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특정하기 힘든데 왜 모습도 음성도 나오지 않은 동영상을 믿고 알리바이라고 인정해주는지 모르겠다"며 "반팔옷을 입었을 수도 있는데 출장이라고 무조건 정장차림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기가막힐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후방카메라와 센서에 대해서는 "개인택시를 중고로 샀을 때부터 이미 달려 있었던 것"이라며 "변호인이 물었을 때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지만 분명 센서가 있는 차를 탔다고 검찰 측에 얘기했는데 폐차한 상황에서 마땅한 증거가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가 과연 피의자 심문조서를 제대로 들여다봤는지 의문"이라며 "피고인측은 서울에서 온 유명 로펌부터 변호사가 9명이나 등장했는데 돈도 명예도 지위도 없는 나는 기댈 곳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와 관련해 A조합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하도 오래된 일이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기억이 잘 안난다. 검찰 기록에 다 나와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무고죄 고소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상고 여부가 남아있기 때문에 확정 판결이 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볼 예정"이라며 "조합장 재출마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무죄 판결 소식을 들은 제주여성인권연대와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가 검찰의 상고를 촉구하며 지난 18일부터 제주지방검찰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송영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는 "1·2심 판결문을 모두 봤는데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1심에서 2심으로 넘어가면서 담당검사도 바뀌었다"며 "피해지원 변호인단도 꾸리고 탄원서도 제출하겠지만 지금 시급한 건 검찰의 상고"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상고 기간은 오는 21일까지다. 제주지검 관계자는 "아직 상고 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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