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집이 관광코스의 일부가 돼버리고 꾸미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느새 제주 이주 11년차에 접어든 방송인 허수경씨(49)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마당에 나가 풀을 뜯고 있노라면 관광객들이 와서 인사를 건네 화들짝 놀랐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친한 지인의 부탁으로 처음 방송에 제주도의 집을 공개한 뒤로 후회를 한 적도 많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음을 달리 먹게 됐다. ‘내가 뭐 그리 다르다고’라는 생각에서다. 먼저 다가가기 시작하니 지역민들은 그를 와락 끌어안아줬고, ‘방송인 허수경’이 아닌 ‘별이 엄마’로 대해줬다. 서울에서 방송을 하면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었다.

방송일 때문에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이중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머지않아 제주가 삶의 주 무대가 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중이다. 더불어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가 계속해서 제주다울 수 있는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유난히도 햇살이 눈부셨던 지난달 29일, 제주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허수경씨는 “평생 제주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짙어지고 있다”면서 지난 11년간의 제주 생활과 앞으로 이어질 제주의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다음은 허수경씨와의 일문일답.

-제주에 내려온 지 11년이나 됐다. 처음 제주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사실 처음에는 직업을 버리고 싶었다. 지금은 처음보다 더 애정을 갖고 귀하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방송하고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빨리 익숙해지고 비교적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TV에서 본 사람’으로 대하고 이런 관계들이 너무 어려웠다. 삶에서의 고비를 겪으면서 ‘내가 시청자와 진정한 소통을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 일을 떠나자고 마음먹은 거고, 내가 제일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했다.

나는 항상 자연 속에 사는 걸 꿈꿨고, 그냥 자연 속에서의 삶이 아니라 자연을 만지고 뒹굴어야 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사는 집을 옮겼다. 처음에는 서귀포 토평에서 귤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남아있는 서울에서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놓아지지 않아서 절반은 서울에서, 절반은 제주에서 살았다.

사실 이전에는 항상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서운함과 경계심이 있었다. 상대방들은 나에대해서 표면적인 정보로만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내가 아기 엄마가 되고 나이를 먹으니까 대중들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더라. 이해해주기 시작했고 나도 털어놓게 됐다. 우리가 같이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최근 방송에 딸 허은서양(별이)이 나와서 예쁜 외모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잘 크고 있나. 제주에서의 삶은 만족하고 있나.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데 올해부터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작년까지 서귀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반 친구들 중에 ‘제주살이’를 하러 온 아이들이 있다보니 본인도 ‘서울살이’를 해보겠다고 하더라. 육지 아이들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해서 서울 학교에 보내긴 했는데 요새 제주도가 그립단 말을 자주하곤 한다. 시골학교는 반이 하나라 관계의 깊이가 남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중요한 결정은 마음이 달라진다고 막 바꿔선 안된다고 처음부터 말했고, 1년은 채우라고 했다. 그런데 자꾸 딸아이의 눈빛이 흔들린다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다가 이주 8년차에 접었을 무렵 불현 듯 삶을 공개했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계기가 있나. 불편한 점은 없나.
▶방송작가로 있는 친한 후배가 방송에 꼭 좀 나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서 꽁꽁 숨겨놨던 집을 오픈하게 됐다. 이후로 관광버스가 우리집 앞에 찾아와서 관광객들이 불쑥 인사를 건네왔다. 세수도 안한데다 엉덩이방석을 하고 밭일을 하고 있는데 말을 걸어오니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불편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뭐 다르다고’라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먹게 됐다. ‘내가 무슨 비밀이 많다고, 알거 다 아는데’하는 생각에 먼저 지역에 스미기 시작하니 와락 안아주는 분들이 많더라. 제주도 사람들 특성이 그렇지 않나.

그런데 지인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2층 게스트룸을 아예 빌려달라며 요청하시는 분들은 아직도 너무 당황스럽다. 얼마든지 돈을 내겠다며 찾아오시는데 개인적인 공간이다보니 빌려드릴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제주에 오니 지인들이 많이 내려오지 않나. 여느 이주민들도 느끼는 고민이지만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때도 있을 것 같다.
▶제주에 오면 공항에 픽업 나와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든 전화해서 ‘나 갈게’라고 하면 환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라디오를 진행하면서도 그런 고충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바쁜 시간인데 휴가철이라고 지인이 불쑥 내려온다면서 말이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갈게’라고 말만하고 오는 분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 지인들이 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갈 때 쓰레기를 버리고 먹은 건 스스로 설거지를 해놓고 가라’고 말한다. 그런 걸 안 해주면 저도 항상 웃으면서 손님을 맞기가 힘들다. 오는거야 마다하지 않지만 예의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제주로 이주 온 유명인들이 많다. 자주 만나곤 하는가.
▶제주에 사는 꽤 많은 유명인들을 알고 있지만 만나서 어울리는 건 드물다. 제주에 온다는 것 자체가 폐쇄적인 성향이 있다. 어쨌든 제주도까지 와서 산다는 건 남다른 생각과 취향이 있는 거다. 나도 그렇지만 서울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 훨씬 더 소득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보장되는 게 있는데 그걸 버리고 왔을 때는 그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거다. 그건 상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주 선배로서 이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제주에 이주 오는 사람들 중 제주를 너무 모르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에 원래 살고 있던 지역민들을 이방인 취급하고 자신이 뭐 했던 사람이네, 육지에서 세련된 문화를 경험했던 사람이네 하면서 지역민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여기 사람들’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다. 거기에 굉장히 분노하게 되더라. 그래서 내가 몸소 지역 속에 흡입되서 같이 어울리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주를 결심하는 분들한테 정말 드리고 싶은 얘기는 그렇게 지역주민하고 어울릴 생각이 없으면 그 지역에 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제주도 분들은 성향이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외지로부터 혹독하게 뺏기거나 착취 당했던 역사가 깊기 때문에 굉장히 배척이 심하다. 먼저 가서 넙죽 인사 안한다. 하지만 먼저 가서“안녕하세요, 저 이사 왔는데요. 이것 좀 알려주실래요”하면 와락 돌아서준다. 자기는 팔짱끼고 있으면서 무뚝뚝하다 불친절하다 불평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제주는 바람이 너무 세서 말이 짧다. “하셨어요~?”라고 못하고 “꽈~?”라고 말한다. 무심한 듯한 말투에 상처받지 말길 바란다.

-지금 제주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뭔가. 처음 왔을 때의 제주와 지금의 제주는 어떻게 다른가.
▶어머니의 고향이 제주라서 어렸을 때부터 제주에 다녔는데 그때는 제주가 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발전이 시작되기 시작하고, 그 발전의 방향이 규칙이나 매뉴얼이 없는 것 같았다. 어떤 일목요연한 힘이 개발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이게 조정을 해야 되는 상황에 이른거다.

나는 개발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발 반대론자도 아니다. 개발은 지역민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관광객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런데 제주가 존재하고, 그 존재의 의미가 있는 이유는 제주가 갖고 있는 자연환경적 인프라 때문이다. 그러니까 버리면 안 될 걸 구분하자는 거다.

절대 버려선 안될 걸 구분해서 사람들에게 그 원형 그대로의 가치를 알릴 필요가 있다. ‘절대 못 들어갑니다’라는 말만 해놓지 말고 실감시켜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행정에서 널려있던걸 하나씩 주워 담기 위해 체계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제주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좋아하는 장소는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쉽게 안 바뀐다. 바라보는 바다로는 사계바다를 좋아한다. 딸이 어릴 때는 곽지과물해변에 굉장히 자주 갔다. 용천수, 돌, 바다의 어우러짐이 굉장히 깨끗한 곳이다. 예전에 함덕 서우봉 밑이 좋다고 책에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하도해수욕장 쪽으로 도망갔다. 딱히 뭐가 없지만 시골모습 그대로가 참 좋다. 그 근처에 있는 지미봉도 추천할만하다. 등산 같은 기분도 들고 산책 같은 느낌도 드는데, 정상에서 느끼는 탁 트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서귀포에 큰엉해안이라고 있는데 파도치는 게 얼마나 속 시원한지 모른다. 실연하신 분이나 회사에서 깨진 분이 한 번 가면 실컷 울다 올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동백동산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이 계절에 여린 잎들 사이로 바람을 맞으며 그림 같은 산책이 가능한 곳이다.

-조만간 이사 가는 협동조합형 마을인 ‘조천스위스마을’에 대해 좀 이야기 해달라. 마을에서 생활한복가게도 직접 운영한다고 들었다.
▶관광객들이 제주를 여행하면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다. 먼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여행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또 밤이 되면 갈 곳이 없고, 동선이 길어서 몇 군데 가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훅 가버린다. 그래서 쇼핑부터 먹는 것까지 있고 밤이 되도, 비가 와도 즐길 수 있는 마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스위스마을이 그런 곳이라 선택하게 됐다.

해외 관광지로 성공한 사례를 보면 마을 중심이다. 마을 중심의 관광테마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지금까지의 문제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끌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었다.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최대한 제주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관광지로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되 그것이 세상을 위한 일이면 좋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생활한복 가게를 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주에 살면서 아쉬웠던 게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문화적 상품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국이나 페루, 하와이에서는 전통옷을 실생활에서도 많이 입는데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젊은이들도, 외국 할머니들도 좋아할 만한 생활한복을 만들어 팔게 됐다.

-앞으로 제주에서의 삶의 계획을 들려준다면.
▶평생 제주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짙어지고 있다. 아이도 있고 하니까 아무래도 제주에 다시 돌아올 것 같다. 그래서 제주도가 제 삶의 주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는 반반이었다면. 제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나를 믿고 들어주는 청취자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제주도가 내 삶의 무대다. 서울은 이따금씩만 갈 수 있는 구도로 늙어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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