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인 지탄을 받은 고유정(36) 전 남편 살인사건 법정싸움이 23일 시작된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 고유정 사건 공판준비기일이 예정됐다.

공판준비기일은 공판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을 정리하는 자리다.

비록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고유정이 이날 법정에 모습을 비칠 가능성은 낮지만 이번 사건 재판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고유정은 줄곳 피해자 강모씨(36)가 자신을 성폭행하려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검찰에 송치된 이후에는 일체의 진술을 거부해왔다.

검찰과 경찰은 여러 정황상 고유정이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발적 범행 즉, 범행에 참작할 만한 동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인지 등에 따라 처벌 양형기준은 무기징역에서 최저 집행유예까지 차이가 크다.

앞으로 법정에서도 최대 쟁점은 계획범행 입증이 될 전망이다.

◇범행계획뿐만아니라 알리바이까지 꾸며
고유정은 살인과 시체 훼손, 유기 등의 범행뿐만 아니라 범행이 발각났을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범행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려 처벌을 최소화하려한 것이다.

고유정은 강씨를 살해하고 이틀 뒤인 5월27일 낮 12시35분쯤 119에 전화해 범행 중 다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문의했다.

같은날 오후 2시48분에는 범행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살해된 강씨와 자신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조작했다.

고씨가 "성폭행미수 및 폭력으로 고소하겠어.넌 예나 지금이나 끝까지 나쁜 인간이야"라고 따지는 메시지를 보낸 뒤 강씨 휴대전화로는 "미안하다. 고소하지 말아달라"는 답변을 했다.

이 문자메시지 때문에 경찰은 강씨가 당시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오해했고 초동수사 부실을 부른 단초가 됐다.

고유정은 범행 다음날인 5월26일 스마트폰으로 '성폭행 신고' '성폭행 미수'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고유정은 오른손과 복부, 팔 등 몸 여러 군데에 난 상처를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한 상태다.

검찰은 전문가 감정을 통해 고유정 몸에 난 상처는 방어흔 즉, 고유정이 전 남편의 공격을 막다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전 남편을 공격하다가 생긴 공격흔이나 자해로 해석했다.

◇졸피뎀, 피해자에게 어떻게 먹였나
고유정이 사전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정황은 검찰과 경찰의 말을 빌리자면 '차고 넘친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단서이자 피해자 혈흔에서 검출된 졸피뎀이 그렇다.

고유정은 지난달 10일부터 16일까지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졸피뎀, 키즈펜션 CCTV, 제주 렌터카 블랙박스, 혈흔, 호신용 전기충격기, 니코틴 치사량' 등을 검색했다.

5월17일에는 충북에 있는 한 병원에서 감기약과 함께 졸피뎀 성분이 들어있는 수면제 졸피드정 7정을 처방받았다.

범행 이틀전인 5월23일 스마트폰으로 '졸피드정, 졸피뎀 구매' 등을 재차 검색했다.

범행 당일인 5월25일 저녁에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펜션 부엌 싱크대 선반에 빈 즉석조리밥 그릇 2개와 일반 그릇 1개가 놓여있는 사진을 찍었다. 그릇 옆에는 수면제 졸피뎀이 발견된 고유정의 파우치가 있다.

검찰은 이 사진을 고유정이 카레 등 음식에 졸피뎀을 넣었다는 의미있는 증거로 보고 있다.

법원이 이같은 정황들을 고유정이 피해자에게 졸피뎀을 먹인 증거로 채택할 것이냐가 문제다.

음식에 넣었을 것이란 추정은 가능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졸피뎀을 먹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이를 두고 공방이 예상된다.

최근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보육교사 살인사건 1심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의심이나 정황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수 없다"며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취지의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또 다른 범행동기 있을까?
고유정 사건은 범행동기부터 미스터리였다.

평범한 주부가 한때나마 사랑했던 남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하는 엽기적인 사건을 벌인 배경에 관심이 쏠린 건 당연했다.

수사당국은 고유정이 강씨가 원만한 재혼생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여겨 살해했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혼과정에서 증오의 대상이 된 피해자와 아들을 엮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이 피해자의 법적 대응으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다"고 밝혔다.

강씨와 아들의 주기적인 면접교섭이 이뤄질 경우 현 남편을 친아버지로 알고 있던 아들에게 강씨의 존재를 알려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게돼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특히 3월2일 의붓아들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등 불안한 재혼생활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만나는 일이 반복될 경우 현 남편과 불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판단해 범행을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법정에서 또 다른 범행동기가 제시될지, 아니면 기존 범행동기를 뒷받침할 새로운 정황들이 드러날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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