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여기 버리시면 안 되는데…", "음식물이라도 비우고 오셔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강렬한 뙤약볕이 쏟아지던 지난 2일 오후 제주시 서부지역의 한 해수욕장.

이 곳에서 클린하우스(제주형 분리수거함) 청결지킴이로 근무하고 있는 60대 A씨는 간이 의자에 앉아 5m 앞 클린하우스를 가리키며 연신 땅이 꺼질 듯한 한숨만 내쉬었다.

애당초 이 시간대 도내 모든 클린하우스는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에 따라 가림막이 쳐진 채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하지만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클린하우스는 불가피하게 그러지 못한 상태였던 탓이다.

2017년 7월부터 도내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는 쓰레기의 소각·매립을 최소화하고 재활용률을 최대화하기 위해 쓰레기를 종류별로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배출하도록 한 제도다.

기준을 보면 스티로폼과 병류, 캔·고철류, 흰색 종량제 봉투, 음식물 쓰레기는 매일 배출할 수 있지만, 플라스틱류(월·수·금·일)와 종이류(화·목·토), 비닐류(목·일)는 정해진 요일에만 배출할 수 있다. 배출시간 역시 오후 3시부터 다음달 새벽 4시로 정해져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차에 10만원, 2차에 20만원, 3차에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날 오후 1시쯤 A씨가 맡고 있는 클린하우스에는 이미 분리 안 된 온갖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흘러 넘치고 있었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부터 종이 컵, 종이 컵홀더, 종이 박스, 캔, 병, 유리, 휴지,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기, 다 쓴 부탄가스통, 스티로폼 용기까지 대부분 피서객들이 버렸을 법한 쓰레기들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별도 분리수거함이 없어 A씨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흰 봉투에 모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피서객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수시로 찾아와 마구잡이식으로 버리려 하는 탓에 봉투 밀봉이 어려워 클린하우스 주변에는 참기 힘든 악취가 진동했다.

A씨는 "휴가 온 사람들이 뭘 알겠느냐. 설령 제도를 안다고 하더라도 휴가지까지 와서 지키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이중삼중 분리수거를 하는 일이 고되긴 하지만 내 고향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동부지역 해수욕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한 해수욕장에는 150m 간격으로 클린하우스 3개가 비치돼 있었지만 어느 하나 깨끗이 비워진 게 없었다. 한 클린하우스의 경우 종이수거함이 열리면서 해안도로 방향으로 종이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또 다른 해수욕장의 경우 주차장과 맞닿은 화장실 앞에 클린하우스가 아닌 별도의 분리수거함이 추가 설치돼 있었는데, 이마저도 빨대가 꽂혀 있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과 맥주 캔, 비닐봉지 등이 마구 섞여 난잡한 상태였다.

분리수거함 뒤에 걸린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경고' 안내판이 무색했다.

관광객 윤모씨(35·서울시)는 "제주에서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한라산에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도 쓰레기통이 있어 쓰레기를 버렸는데 이에 대한 안내가 없었고 일부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장면도 봤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내 해수욕장 곳곳이 쓰레기 무법지대가 되면서 최근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에서는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피서객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캠페인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캠페인이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난 현재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제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31일까지 캠페인에 참여한 피서객은 하루 13.5명꼴인 총 229명에 불과했다.

이 같은 상황에 일부 읍·면·동지역에서는 피서철 해수욕장 클린하우스에 한해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지만 행정당국은 우선 계도·단속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 시행 초기 단계에서 예외사항을 둘 경우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시민의식 향상이 무엇보다 중요한 제도인 만큼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피서객들의 경우 추적 문제로 단속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폐쇄회로(CC)TV나 차량 블랙박스, 시민 신고 등을 통해 단속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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