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늦은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한 횟집.

이 횟집 주차장에는 빨간색으로 '아베 아웃(Abe Out)! 우리집 오지마'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특히 이 현수막에는 '을지문덕이 아베에게 시를 띄우다'라는 문구와 함께 '책구천문(策究天文)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지족원언지(知足願言止)'라는 한시도 쓰여 있었다.

이 한시는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살수대첩 때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조롱조로 지어 보낸 것으로, '패색이 짙으니 이제 그만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장인 박진우씨(55)는 지난달 1일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직후 이 현수막을 가게 앞에 내걸었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현수막과 같은 내용의 스티커를 제작, 조만간 성산읍상가번영회와 공동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박씨는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하기 위한 작은 행동"이라며 "주변 상인들뿐 아니라 손님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호응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횟집에서 150m 떨어진 한도교 다리 곳곳에도 'NO 일본 EEZ(배타적경제수역)는 못 들어가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성산포연승선장협의회 명의였다.

한상헌 성산포연승선장협의회 회장은 "EEZ 안 어업량을 결정하는 한일 어업협정이 4년째 지지부진한 탓에 우리 지역 갈치잡이 어선들은 매년 속앓이를 해 왔다"며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여론으로 현수막을 걸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근 동남초등학교와 삼달리사무소, 성산국민체육센터 등에도 성산읍연합청년회가 내건 '오늘의 대한민국은 다릅니다. 우리가 이깁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있었다.

이동수 성산읍연합청년회 회장은 "불매운동은 관(管)이 아닌 민(民)이 자발적으로 해야 의미가 있다는 데 뜻을 모아 현수막을 걸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마을 곳곳에 '노 재팬(No Japan·일본산 불매)'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곳은 도내에서 성산읍이 거의 유일하다.

성산읍 주민들은 대체로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먼저 성산읍은 제주 3대 항일운동 중 하나로 꼽히는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지역이다.

1930년 성산읍 성산리에서 관제로 운영되던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이 일본인 상인에게 지역 해산물을 헐값에 넘기는 일이 발생하자 성산읍을 포함한 동부지역 해녀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항일 운동이 잇따라 전개됐던 것이다.

성산읍은 또 1945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제주에서 본토 방어를 위한 결7호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해군 자살특공부대를 배치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 현재 성산일출봉에는 당시 건립된 진지동굴(18개·등록문화재 제311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지난달 8일에는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가 당시 20세 전후 청년으로 구성된 일본 해군이 성산읍 성산리에 두 개의 위안소를 설치·운영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분이 일기도 했다.

지역 토박이로 관광해설사를 지낸 오인용 성산읍상가번영회 회장은 "성산일출봉으로 유명한 성산읍은 사실 일제 강점기의 아픔이 서린 곳"이라며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갈등과 엮이면서 주민들이 더 분노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제주 곳곳에서는 민간 중심의 '노 재팬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제주평화나비와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제주지역준비위원회, 제주흥사단은 지난 3일부터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일본국총영사관 앞에서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사단법인 제주민예총도 8일 공동 성명을 내고 "민족예술의 역량을 모두 모아 항일투쟁에 집중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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