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2011년 제주 외자유치 1호 사업으로 선정된 예래휴양형주거단지가 천문학적인 금액의 국제소송에 휘말릴 위기에 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액의 투자유치로 들떴던 대규모 사업들이 잇따라 자금난에 허덕이거나 난개발 논란 속에 주춤하고 있다. 제주에 황금알을 가져다 줄 것 같던 외자유치사업들이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뉴스1 제주본부는 3차례에 걸쳐 주요 외자유치사업들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지난 7일 낮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제주 서귀포시 예래동 해안에 있는 논짓물(용천수)에는 가족과 커플로 보이는 다수의 관광객들이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쫓고 있었다.

논짓물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해안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거리에 페인트칠이 듬성듬성 돼있고 철골 구조물이 보기싫게 드러난 대규모 공사장이 보인다.

공사장을 둘러싼 약 2m 높이의 철제 울타리에는 '출입금지'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있다.

10여년 전 사상 최대 투자 유치로 예래는 물론 제주도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가 지금은 공사가 중단된 예래휴양형주거단지다.

국내 제1호 반딧불이 보호지역, 환경부 지정 자연생태우수마을 등 예래동을 수식하던 자랑스러운 이름들 뒤에 이제 '좌초', '소송' 등 불명예스런 단어들이 따라붙고 있다.

예래휴양형주거단지는 제주도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외자 유치 성공의 대표적인 모델로 떠들썩하게 홍보했던 개발사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잘못된 행정 인허가가 드러나면서 사실상 좌초된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다.

예래단지는 최근 사업시행사인 말레이시아 기업 버자야측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ISD(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해결·Investor-State Dispute)' 중재의향서를 제출해 재조명받고 있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받았을 때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중재의향서는 청구인이 중재를 제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서면 통보로 정식 중재 제기는 아니다. 중재의향서 제출 90일 이후 정식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버자야측이 추산한 손해액은 4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개로 버자야측이 JDC를 상대로 제기한 35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김기철 예래주민자치위원장은 "살기좋던 우리 마을이 안 좋은쪽으로 회자되니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며 "토지주는 물론이고 모든 주민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사업이 중단된 건물은 보기싫은 흉물로 남아있다"며 "주민들 입장에서는 하루 속히 정상화되길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국제자유도시 외자 유치 1호이자 첫번째 제주 외국인 투자 지역으로 지정된 예래주거단지의 몰락은 제주 외국자본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유치만되면 제주도를 초고속으로 발전시켜줄 것처럼 기대를 모았던 외국 자본들은 주춤하거나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투자만 해주시면" 도청 현관에 말레이 깃발 달기도
2006년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한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제주도와 JDC는 본격적인 외자 유치에 뛰어들었다.

그 첫번째 성과가 예래휴양형주거단지였다.

JDC가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예래휴양형주거단지는 주거·레저·의료기능이 통합된 세계적 수준의 휴양형 주거단지를 조성해 지역경제 발전과 국제자유도시 기반을 구축한다는 목적 아래 2005년 제주특별법에 따라 서귀포시가 개발사업시행을 승인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2조5000억원을 들여 서귀포시 예래동 부지 74만1000㎡에 1531실의 휴양콘도와 935실의 호텔, 의료시설, 상가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중국 화교들이 출자한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이 이 사업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2009년 1월28일 사업시행자는 버자야그룹 계열 버자야랜드와 JDC가 각각 81%, 19%의 지분으로 설립한 합작법인 버자야리조트로 변경된다.

투자 초기 제주도는 버자야그룹의 투자를 받으려고 감동서비스를 편다는 전략을 짰다.

제도적인 면에서는 고도 완화를 비롯해 유원지 조성계획 변경을 조속히 처리하는가 하면 버자야 그룹 회장과 임원들을 위한 영주권 취득 기준 완화와 공항심사 우대권 발행까지 추진했다.

예래휴양형주거단지 내 주요 간선도로를 '버자야로'로 바꾸고, 도청 현관에 말레이시아 국기와 버자야 그룹 상징 깃발을 달았다고 하니 당시 버자야측에 대한 애정공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도는 버자야 투자 유치에 한창 열을 올리던 2008년 2월 보도자료에서 "외국인 투자의 성공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그래야 현재 협상 중인 다른 투자자들이 쉽게 투자결정을 할 수 있다"며 "버자야그룹을 감동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는 결코 특혜가 아니며 외국의 경우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버자야측은 국내 관광사업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로는 최대규모인 1250여억원을 투자했다. JDC는 이 성과로 2011년 관광산업분야 최대 규모의 투자유치 성과로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2013년 착공 2년만에 날벼락을 맞는다.

2015년 3월 대법원이 토지주 4명이 제기한 토지수용재결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이 토지수용재결처분이 무효라고 판결, 같은해 7월부터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예래단지는 관광수익 창출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공공적 성격이 요구되는 도시계획시설인 유원지로 인가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유원지는 법률상 주민복리증진을 위한 공공성이 확보돼야하지만 예래단지는 숙박시설 분양 등 사업자의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어 지난 2월에는 대법원이 토지수용뿐만 아니라 예래주거단지 사업 인허가 등 관련된 모든 행정처분도 무효라고 판결했고 강제수용된 토지를 돌려달라는 토지주들의 소송도 잇따르는 등 사업이 좌초 위기에 내몰렸다.

사업이 사실상 무산돼 투자금 2조5000억원은 물론이고 고용창출 4089명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JDC는 "원토지주, 지자체 등 이해 관계자와 협의해 사업 재추진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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