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삼남매 모두 단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고 모두 검정고시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가족, 이웃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많고 더 행복하니까요.”

지난 14일 찾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안진준(49)·강혜영씨(50) 집.

이 집 삼남매는 모두 단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고 모두 검정고시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남 2녀 가운데 맏이인 필(19)과 둘째인 하(17)에 이어 막내인 림이 만 13살 최연소의 나이로 올해 제주지역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이들 삼남매는 모두 검정고시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빠와 엄마의 성을 나란히 따서 ‘안강’이라는 성을 쓰고 있는 이들 남매는 큰 오빠인 필군이 4세, 둘째인 하양이 2세인 2001년 부산에서 제주로 이주 와 중산간에 터를 잡은 지 15년이 됐다.

부산에서 학원강사와 과외강사로 일하던 강씨 부부는 제주로 떠나왔던 신혼여행의 기억이 좋아 모든 짐을 싸들고 제주행을 택했다. 아이들을 푸른 바다와 숲 속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이들 부부는 큰 아들인 필군이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꼭 보내야만 하느냐’는 고민에 빠졌고, 결국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클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각각 학원강사와 과외강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녀들을 홈스쿨링으로 키우기로 결심한 이들 가족의 우선순위는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오로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틀에 얽매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떠났고, 평일 낮 시간에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국내는 물론 베트남, 중국, 태국, 일본, 캄보디아, 호주까지 때로는 셋이서, 때로는 가족들이 모두 훌쩍 떠났다 왔고, 오래 머물다 오기도 했다.

필군은 “이제와 생각해보니 학교에 안가니까 더 많은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저는 외국에 가 있었다. 14세 때는 중국에 가서 2년간 머무르면서 중국어를 익힐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9개월간 머물렀던 필군은 “처음에는 타지에서 외로운 마음에 엄마한테 돌아가면 안 되겠느냐고 토로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면서 대회까지 출전, 원래 있기로 한 기간보다 더 오래 있었다”고 신이 나 말했다.

하양과 림양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빠 필군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도 자처하며 주변 친구들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님의 동의를 얻은 이들은 돈가스가게와 라면가게에서 각각 서빙일을 하고 있다.

자유로운 삶이 마냥 좋아보이지만 이들 남매에게도 고민은 많다. 림양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게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면서 “친구가 없어서 우울한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사춘기 무렵에는 왜 학교에 보내지 않았느냐며 부모님에게 투정을 부려본 적도 있다. 강씨 부부가 가장 우려스러웠던 부분이었지만, 또래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캠프에 참가하면서 문제를 해소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들 남매가 공부를 등한시 한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 정도 매일 일정한 양의 문제집을 풀면서 학교 정규교육 수준의 학습을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필군은 기타를 치고, 하양은 요리를 하고, 림양은 그림을 그렸다.

세 명이 합쳐 모두 9번의 검정고시로 초·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내면서 주변에서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웠지만 이들은 “시험은 공부와는 별개”라고 말했다.

강씨는 “시험은 공부가 아니라 요령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시험 점수에 비해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게 훨씬 작을 것”이라며 “다만 검정고시에 응시하도록 유도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강씨 부부는 모 공중파 방송의 영재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이 왔을 때도 정중히 거절했다. 삼남매가 학교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영재는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강씨는 “걱정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워낙 책을 좋아해 알아서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다만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들을 익히면서 책과 멀어지는 것과 같아 걱정”이라고 여느 부모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공부는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판단하고, 대학에 가야 할지 여부도 그때 결정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하양은 “저희 인생은 저희가 사는 거니까 저희 스스로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저 같은 경우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지만 수의학과에 들어가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 겁이 난다”고 요즘의 고민을 토로했다.

스무살이 되면 무조건 독립이라는 강씨 부부의 철칙에 따라 곧 독립을 앞두고 있는 필군은 “중국어와 영어 등 어학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길은 정하지 못했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얼굴에서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최연소로 졸업한 림양은 “사실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모르겠다”면서 “일단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맘껏 놀아보면서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각각의 색깔이 다른 이들 남매를 바라보던 강씨는 “사실 하나만을 생각하면 잘 안됐을 때 실망하기 쉬운데 해보고 또 딴 거를 하다보면 삶이 즐겁지 않겠느냐”면서 “무슨 일을 하든 아이들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때가 되면 감귤을 따고 비료도 주고 밭도 일궈야 하는 등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지만 이들 남매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한테 참 고맙다”며 “함께할 수 있는 나날들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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