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농사는 다 망쳤어요. 매일 비만 쏟아지더니 이제 태풍까지 온다니."

나흘 내내 쏟아진 빗물에 잠겨버린 당근 밭을 바라보는 김복수씨(75·여)의 한숨이 길어졌다.

본래 9월 초는 제주농가에겐 당근과 무, 감자 등 월동채소를 파종해 한참 바쁜 시기다. 그러나 올해 제주 농민들은 일손을 내려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지난 8월 말부터 잦은 집중 호우가 쏟아진 데 이어 9월 들어서도 5일 현재까지 연일 비가 내리면서 농경지가 침수되거나 토양이 유실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당근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5일 오후 김씨의 밭을 확인한 결과 1만2898㎡(약 4000평) 규모의 밭은 곳곳이 물에 잠겨 있었고 8월 초 심은 당근 종자들은 축 처져 있었다.

김씨는 빗물에 잠긴 부분을 가리키며 "위에서부터 내려온 빗물이 밭으로 몰리면서 잠기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밭에는 다른 종자를 심는다고 해도 상품으로 쓸 수 있는 열매를 얻기 힘들다"며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액은 그가 밭농사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날도 김씨 밭이 있는 제주 동부지역에는 오후 2시쯤 호우경보가 발효됐다.

김씨와 같은 제주 월동채소 농가가 집중된 동부지역의 지난 1~4일 누적 강수량을 보면 김녕 510㎜, 송당 486㎜, 구좌 412㎜, 성읍 2리 333㎜ 등이다.

이로 인해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파종을 완료한 당근 재배농가의 경우 대부분 침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생산량은 10~20% 줄어들 전망이다.

8월 중순부터 파종 시기인 월동무와 감자 재배농가들도 잦은 비 날씨로 파종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8월 말부터 이어진 비로 인해 약 1790㏊ 농경지에 호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배작물별로 보면 당근 580㏊, 콩 506㏊, 양배추 184㏊, 감자 145㏊, 월동무 120㏊ 등이다.

여기에 6일부터 제주는 제13호 태풍 '링링(LINGLIMG)'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 강풍과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제주 농정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제주도는 신속한 긴급 복구 지원 및 후속조치를 위한 예비비를 투입할 계획이며 제주농업기술원은 문자 등을 통해 농가들이 피해 최소화를 위한 준비에 나설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5일 오후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시 구좌읍과 서귀포 대정읍에 비 피해가 발생한 당근 및 감자 재배농가를 찾아 농민들을 위로하고 대책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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