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향주(母香酒)'

고려시대 때부터 개성 소주, 안동 소주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소주로 명성이 높았던 제주 고소리술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척박한 외딴 섬에서 생계를 돕겠다며 밤이 늦도록 술을 빚다 겨우 잠을 청한 어머니의 품 속 향기를 담았다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고소리술은 그만큼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해 왔다.

그러나 고소리술은 일제강점기라는 가혹한 시대를 건너며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고 전통 명맥을 잇고 있는 곳도 이젠 단 한 곳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빚는 고소리술…향긋하고 좋은 목 넘김
 

물을 가두기 힘든 현무암 지반인 제주에서는 논농사 대신 밭농사가 발달해 밭작물인 차조 등이 주로 재배됐다.

그렇게 차조는 제주에서 주식 뿐 아니라 술의 재료로도 많이 사용됐는데 차조로 빚은 오목한 구멍떡인 오메기떡을 발효한 것이 탁주인 '오메기술', 이 오메기술을 고소리(소줏고리의 제주어)라는 옹기를 사용해 증류한 뒤 숙성시킨 것이 바로 소주인 '고소리술'이다.

오메기술을 만들고 난 뒤 고소리에 오메기술을 담아 꾸준히 장작불을 지펴 찬 물을 붓고, 주둥이를 타고 흐르는 이슬들을 한 방울씩 받아내 1~2년 숙성해야만 오롯이 한 병이 완성돼 고소리술은 시간이 빚는다고도 한다.

술 자체로만 봐도 좋은 술이다. 고소리술은 알코올 도수가 40도가 넘는 독주이긴 해도 상당히 향기롭고 목 넘김이 좋아 마시는 흥취가 있다. 첨가물이 없어 많이 마셔도 뒤끝이 없다고 전해진다.

고소리술은 고려시대 때 일본 정벌을 위해 제주도에 주둔했던 몽고군이 증류주 제조법을 전하면서 주로 제례나 경조사 때 유통돼 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성과 안동에서 소주가 유명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가가호호 빚어지던 고소리술의 명맥이 끊기기 시작했던 건 주세법이 시행됐던 일제강점기 때부터였다. 해방 후에도 주세법이 그대로 통용되고 양곡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양곡관리법'까지 시행되면서 고소리술은 말 그대로 '밀주(密酒)'가 됐다.

◇1995년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재조명…4대째 계승
 

고소리술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제주도 무형문화재 지정(제11호)이 이뤄졌던 1995년 4월부터다.

당시 기능보유자는 제주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시어머니 고(故) 이성화 할머니(1888~1989)로부터 고소리술 제조법을 전수받았던 김을정 할머니(94)였다.

현재 그 명맥은 김 할머니의 며느리인 전수교육조교 김희숙씨(61)가 잇고 있다. 김씨는 고소리술 계승·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정부로로부터 주류 분야 전통식품명인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몇 해 전부터는 김씨의 막내 아들인 강한샘씨(31)도 전수생을 자처하고 나서 고소리술 명맥 잇기에 물심양면 힘쓰고 있다.

4대(代)에 걸친 이 치열함의 흔적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한 '제주술익는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열을 맞춰 줄지은 온갖 형태의 고소리와 장독대, 누룩틀 등이 세월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전통 방식으로 빚은 고소리술은 오직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최소한의 물량만 제작돼 판매 개시 후 30분이면 금세 동난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고소리술을 접할 수 있도록 제조·시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김희숙씨는 "가난했던 시절 제주 아낙네라면 누구나 빚어 보관했었던 고소리술은 제주 고유의 역사와 풍토, 민속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이라며 "앞으로도 고소리술을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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