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제주시 문연로.

제주도청과 제주도의회 사잇길인 이 곳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정과 의정을 향한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제주 집회 1번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0m 길이의 이 곳 양 가로변에는 불과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이 뒤엉켜 있고, 그 뒷편 인도에는 '제주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들이 천막들을 지어 연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애석하게도 어느새 이 곳을 지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 지역 주민들에게 일상이 돼 버린 이 풍경은 제주가 '갈등의 섬'이 됐음을 체감하게 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갈등경보·주의보 15건…찬·반 첨예 '뜨거운 감자'

도는 가장 시급한 소통·협력 분야 과제로 '제주형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이 꼽혔던 지난해 8월 도민 인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월 '2019년 갈등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 때 도입된 게 '갈등경보제'다. 갈등 징후가 포착되면 심각성, 확산 가능성 등에 따라 단계별 경보를 발령해 갈등을 사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도는 1년도 안 돼 벌써 2개 사업에 '갈등경보', 13개 사업에 '갈등주의보'를 발령한 상태다.

갈등경보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 문제로 최근 공론화 찬반 논란이 첨예한 '제2공항 건설사업'과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불만이 거센 '국립공원 확대 지정사업'에 내려졌다. 모두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다.

갈등주의보는 난개발 논란을 낳고 있는 민간 대규모 개발사업에 주로 내려졌다.

람사르 습지도시인 제주시 조천읍에 국내 최초의 드라이빙 사파리를 조성하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조성사업', 중국 기업이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오름과 해안도로에서 추진 중인 '뉴오션 타운 개발사업', 특수목적법인(SPC)이 서귀포시 대정읍 해역에 풍력발전기 등을 설치하는 '대정 해상풍력 발전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대대적인 삼나무 벌채로 환경 파괴 논란을 빚었던 '비자림로 확·포장공사', 보상 문제가 걸려 있는 '하수처리시설 현대화 사업', 회천동 주민 중심의 '회천매립장 음식물 쓰레기 반입 금지' 등 도정이 추진 중인 사업들도 이름을 올렸다.

도는 갈등단계를 잠재·표출·심화·교착·해결·재발기로 나누어 단계별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갈등예방 노력 선행돼야"

시민사회에서는 갈등경보제가 도입된 지 1년도 안 된 현 시점에서 도가 15개에 이르는 굵직한 현안사업에 일제히 갈등경보·주의보를 내린 것 자체가 공공 갈등관리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원희룡 도정 출범 이후 도가 16억원을 들여 2016년에 수립한 '제주미래비전'을 보면 이미 '현안과제 가이드라인'과 예방적 갈등영향분석 실시, 갈등조정협의회 구성 등의 내용을 담은 '갈등관리 및 조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는 "사실상 정책결정권자의 의지에 달린 문제 아니겠느냐"며 "사후관리가 아닌 사전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선 갈등조장 후 갈등관리식의 태도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원희룡 도정 2기에 들어 도는 도지사 직속 소통혁신정책관을 신설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신설부서인 탓에 부서 내 업무체계가 막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인 데다 부서 내 전문인력이 전무하고 예산 마저 부족한 문제로 사실상 체계적인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전국 최초로 도입된 '사회협약위원회'도 제주특별법상 도지사 자문기구에 그쳐 기능과 역할, 위상 등의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현실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도는 제도 전반을 손질하고 있다. 제주특별법 7단계 제도개선 과제에 사회협약위를 '조사·확인·분석·연구·조정·중재' 기능을 갖춘 합의제 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담는 한편, 기존 '도 사회협약위 조례'와는 별도로 '도 갈등관리 조례'를 새로 제정하는 방안을 병행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만은 않다.

김주경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도가 준비 중인 공공 갈등관리 시스템은 법 개정 문제와도 얽혀 있어 한 번 만들면 고치기 힘든 구조"라며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되기 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전문인력 중심인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 경기도 갈등조정관 등 다른 광역자치단체 사례를 벤치마킹해 조직을 우선 재개편해야 한다"며 "이와 동시에 기존 공무원 보다는 공공 갈등관리 관련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들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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