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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일본 기자가 말하는 일본의 소재력(素材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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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인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 말 중의 하나가 ‘소재’(素材)다.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리스트국가에서 제외하고, 한국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수불가결한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등 소재의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촉발된 한·일 무역 갈등이 낳은 결과다. 이제 소재(素材)는 국민적 염원을 담은 물질이 되다시피 했다.

정부가 소재산업 육성 방안 발표를 황급히 해도 국민이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게 되고, 많은 언론이 소재산업이 금방 일본을 따돌리고 자급할 수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한·일간 정치적 갈등에 산업 이슈가 따라오는 형국이 되다 보니 언론의 과잉 또는 과민 보도가 나오게 마련이다. 일본 언론도 입장만 다를 뿐 비슷한 행태를 보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이 “우리도 해보자”고 나서는 소재 산업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 마침 지난 11일 소재산업의 기술적 측면을 일본의 전문 기자에게서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사단법인 NPI가 주최하는 ‘라이징테크(Rising Tech)포럼’에서 일본 산쿄(産業)타임스의 이즈미야 와타루(泉谷涉) 사장이 ‘닛폰의 소재력(素材力)’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즈미야 사장은 인사말에서 “얼마 전 이탈리아 기자가 죽고 나자 내가 반도체 분야를 가장 오래 취재한 기자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반도체 분야를 43년 동안 취재했고, 소재 및 반도체 관련 책 27권을 펴낸 경력이 그의 전문지식과 정보력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왜 일본은 소재산업에 강한가?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의 강연 초점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맞춰졌다. 일본이 소재산업에 강한 이유는 한국 언론에 많이 소개됐지만 일본 전문가에게서 직접 듣는 맛은 또 달랐다. 일본 소재산업에 대한 그의 소견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은 소재 산업에서 세계 최강이다. 소재를 만드는 일본 기업들은 개발하는 데 수십 년을 쏟는다. 일본인은 단순작업을 오래 하는 인내심이 강하다. 이익을 한 푼 못 내면서도 최고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을 인내한다. 소재 개발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건 소재산업의 속성이다. 도레이는 탄소섬유를 개발하는 데 50년 걸렸고, 지금은 보잉항공사에 막대한 물량을 공급하지만 40년 동안 이익 없이 개발만 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참패했다 해서 일본이 진 것은 아니다. 지금 일본이 가는 방향은 로봇, 센서, 소재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재 국산화 정책에 이런 평을 했다. “한국정부가 소재산업육성을 위해 수천억 원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몇십년간 이익 없이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여담으로 100년 넘는 기업 얘기를 꺼냈다.

“음식점을 포함해 한국에 100년 넘는 기업은 몇 개인가. 서너 개라고 들었다. 중국엔 9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일본엔 10만개 있다. 이중엔 우리 집의 메밀국수집도 들어가지만. 450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 설립된 광산업체가 전자소재를 만든다.”

그가 하고 싶었던 본론은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상호 보완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중국제조 2025’ 프로그램을 통해 반도체 도약 기회를 잡으려는 중국의 산업전략을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굉장한 위험요소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중·일 제조업 가치사슬(Value-chain)은 일본의 핵심장비와 소재를 이용하여 한국이 반도체 등 중간재를 만들고, 이것을 중국이 사들여 완성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체제인데, 이게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즈미야 사장은 “반도체는 50년간 연 10%씩 성장했다.”며 앞으로 펼쳐지는 사물인터넷(IOT), 게임산업, 자율주행차 시대에 반도체 산업과 소재산업은 계속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강연의 핵심은 일본의 강점인 소재산업과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산업이 서로 협력과 교류로 중국의 반도체굴기(屈起)에 대응해야 하는 게 상호 이익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소재산업과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성공한 요인을 설명하는 이즈미야 사장의 결론이 흥미롭다. 일본의 소재산업 성공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신중성의 산물이고, 한국의 반도체강국 성공은 “썩은 다리도 건너본다”는 과감성이 낳은 결실이라는 것이다.

이즈미야 사장의 강의는 일본인 시각에 기반을 둔 견해이긴 하나, 데이터를 통해 폭넓게 세계를 조망하는 기자의 객관적 시야를 감지할 수 있었다. 한국이 소재산업을 성공시키려면, 이익이 안 나지만 오랜 시간 끊임없이 정진해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교훈은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열쇠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즈미야 사장은 강연에서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싸울 때가 아니다. 일본기업들도 타격이 크다”고 말하고 더 이상 정치에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질문에 답변하면서 “아베 정부는 지금의 갈등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한국정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논평했다. 그는 공대 출신이 아니라 주오(中央)대학 정치학과 출신이다.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국내 반도체 회사의 한 임원은 “소재를 포함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그의 분석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 포럼을 주선한 문국현 NPI 대표는 “글로벌한 맥락에서 세계 산업의 변화, 중국의 전략을 깊이 감지하고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정치를 배제하고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즈미야 사장의 논리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정치, 특히 한·일 관계는 국민감정이 얹어진 것이라서 한번 어긋나면 봉합이 힘들다. 결국 한·일 무역 갈등은 소재국산화의 문제로 풀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혜로 풀 수밖에 없어 보인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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