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보물섬 청정 제주가 쓰레기로 시름하고 있다. 아름다운 오름 대신 쓰레기산이 쌓이고, 해안가는 플라스틱컵이 점령했다. 뉴스1 제주본부는 올해 연중 기획으로 제주의 제1가치인 '환경'을 택했다. 다양한 환경 이슈를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전달하고 그 안에서 자연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고치 Green 제주]는 '같이'를 뜻하는 제주어인 '고치'에 '가치'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녹색 제주로 가꿔나가자는 뜻이다. [편집자 주]
 

지난 9일 제주시 건입동의 한 지하 공연장. 여느 공연처럼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왔지만 무대 위에 자리한 악기들은 모두 생소한 모습이었다.

폐목에 버려진 배수관을 엮어 만든 오르간, 소주병에 물을 담아 제작한 실로폰, 페트병 셰이커 등 투박한 악기들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날 준비된 무대는 바로 버려진 쓰레기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업사이클링 공연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다양한 업사이클링 악기들은 실제 악기 마냥 제 몫을 다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도구 역시 모두 쓰레기로 제작됐다. 배수관 오르간은 낡은 슬리퍼, 소주병 실로폰은 수명을 다해가는 쇠숟가락이 소리를 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공연을 총괄한 싱어송라이터 박종범씨는 "배수관으로 만든 오르간은 타악기와 비슷하고, 소주병 실로폰은 기존 악기보다 더 명확하고 맑은소리가 난다"며 "실제 악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쓰인 악기들은 모두 연주자들이 매립장과 바다를 뒤져가며 찾아낸 쓰레기들로 만들어졌다.

박씨는 "나무는 바다에 떠내려온 유목을 주워 활용했고, 배수관이나 소주병도 모두 직접 수거한 것들"이리며 "쓰레기를 줍고 악기를 직접 만드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파이프 오르간의 경우 두꺼운 파이프를 직접 자르며 음계를 맞췄고, 실로폰 역시 물을 일일이 넣어보며 정확한 음계를 찾는 데만 수 일이 걸렸다.

업사이클링 공연을 기획한 문화예술기획자 서한솔씨는 “업사이클링 공연은 해외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쓰레기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이 쓰레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분명히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앞으로도 쓰레기 문제를 문화예술로 풀어낼 예정”이라며 “업사이클링 공연, 교육, 투어 등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짜 쓰레기 버리고 가면 돼요?"

업사이클링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진 한 버스킹 현장. 쓰레기를 손에 쥐고 우물쭈물하던 한 사람이 가수 앞에 놓인 박스에 쓰레기를 던지고 돌아섰다.

지폐도, 동전도 아닌 쓰레기를 팁으로 받는 이 이상한 공연의 이름은 '플로싱'. 플로싱은 이삭을 줍다라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과 노래를 뜻하는 영단어 Sing의 합성어다.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돼 국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cka upp+Jogging)과 같은 맥락의 공연인 셈이다.

팁이 아닌 쓰레기를 받는 공연이다 보니 공연장엔 '플라스틱, 비닐, 일반쓰레기'가 쓰인 종이박스 세 개가 줄줄이 놓여 있다.

업사이클링 공연과 함께 플로싱을 기획한 서씨는 "제주에 쓰레기통이 많이 없어 땅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불편하게 계속 손에 쥐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무엇보다 제주가 직면한 심각한 쓰레기 문제를 문화 예술을 통해 즐겁게 풀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기획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공연 관계자들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올바른 분리수거 방법을 안내하며 환경보호의 의미를 더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연을 본 관객이 팁 대신 플라스틱병을 가져오면 라벨을 반드시 떼서 분리수거 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식이다.

서씨는 "'플로싱'이라는 공연 자체가 낯설다 보니 아직까지 관객 참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분리수거 방법까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호응도가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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