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에 헤어졌던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함께 찾으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죠…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7일 현영자씨(75·여·서귀포시 신효동)는 제주4·3 때 폭도들에 끌려간 후 실종됐던 아버지 고(故) 현춘공씨와 큰아버지 고(故) 현봉규씨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현씨는 22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4·3 희생자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70년이 넘도록 애타게 기다렸던 아버지와 큰 아버지의 유해함을 앞에 두고 끝없이 오열했다.

당시 7살이었던 현씨는 아버지가 폭도들에 끌려갔던 그 날을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범한 날로 기억했다.

그는 "서귀포 집에 가족들과 있었는데 폭도 2명이 난데없이 들이닥치더니 아버지 이름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끌고 갔다"며 "큰아버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종됐는지 모르고 살아왔다"고 눈물 지었다.

현씨의 아버지 고(故) 현춘공씨는 군사재판 사형수, 큰아버지 고(故) 현봉규씨는 예비검속(미리 잡아두는 행위) 희생자로 확인됐다.

각각 다른 곳에서 고충을 당한 형제의 유해는 당시 처형장으로 사용됐던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함께 발견됐다.

아버지가 끌려간 후 현씨 가족은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에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쇠소깍 근처로 피신했지만 생이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씨는 "온 가족이 함께 있으면 더 위험하니 어린 나는 할머니 친정집으로 보내졌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도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졌다"며 "그때 그 피신길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도 여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오열했다.

한참을 눈물짓던 그는 "수십년을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를 함께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한이 전부 풀리는 기분"이라며 "오늘 이렇게 우는 것도 다 기뻐서 그렇다. 오늘부터는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제주4·3평화재단은 이날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4·3 희생자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와 유해 봉안식을 개최했다.

이번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949년 군법회의 사형수 5명, 1950년 예비검속 희생자 7명이다.

이에 더해 2018년 신원이 확인됐지만 관계를 특정하지 못했던 2구의 유해도 이날 봉안됐다. 유가족 추가 채혈을 통해 관계를 특정한 이 2구의 유해 역시 형제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와 인근 도두동 등에서 발굴한 405구의 유해 중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총 133구다.

한편 현재까지 인정된 4·3 희생자는 1만4442명이며 이 가운데 3610명은 행방불명됐다. 사망자 1만389명, 후유장애 164명, 수형자는 27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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