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주도 땅을 옛날식 도량형으로 계산한 결과 6억평이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나라 인구 1명당 평균 12평을 가질 수 있는 면적이니 결코 작은 땅이 아니리라.

제주도 부동산 값 폭등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다. 4~5년 전 외국인 투자이민정책을 편 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 관광객이 갑자기 몰려들면서 땅값을 자극하더니 요즘은 아파트 구매 수요가 늘면서 제주도의 부동산 시장은, 조용한 섬의 분위기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상과열 현상을 빚고 있다. 전통적 삶에 안주해오던 제주도 토박이 주민들에겐 이 현상이 사회 경제적 압박 요인이 되고 있고 이주민에겐 큰 혼란이 되는 모양이다.

제주도는 몇 년 사이에 상전벽해로 변했다. 연간 1200만명이 방문하는 제주공항은 온종일 북새통이다. 약 200㎞의 일주 해안선은 이미 숙박업체들의 공사판이 되었고, 중산간 일대는 중국 고객을 상대로 한 부동산 개발로 날이 새고 저문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 ‘전통적인 제주도’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외국의 낯선 붐 타운을 연상시킨다. 부동산투자 감각이 뛰어난 서울 사람이 아니고는 외지인이든 토박이든 머리가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구체적인 통계 수치에서 이런 혼란스러움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국토교통부가 5월31일자로 발표한 공시지가를 보면 제주의 공시지가 상승률은 전국 16개 시·도 중 1위로 무려 27.77%다. 평균인 5.08%의 5배를 넘고 2위인 세종시의 상승률 15.28%도 훨씬 앞질렀다. 몇 달 전 한 신문에서 본 ‘제주 땅값 활화산 폭발’이란 표현이 실감난다. 실제 가격과 공시지가의 격차가 크다는 건 상식이니 제주도 땅값 열풍을 미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후배 중 한 사람이 제주도 서귀포 시 농촌 마을 이장이다. 인구 9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고 인구 80%가 감귤 농사로 생계를 유지한다. 얼마 전 그 후배 이장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주도의 땅값 얘기가 나왔다. 내가 “신문방송에 보니 제주 땅값이 폭등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이 좀 설레겠구나?” 라고 말한 것이 화두가 됐다.

“선배님, 땅값 오르는 게 마을 입장에서 좀 겁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쑤셔놓는 거 같습니다. 우리 마을에도 전에 없던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소수지만 동네 아줌마 사이에 아파트 구매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감귤농사를 짓던 아줌마들이 2억~3억원짜리 부동산을 사야 한다고 덤비니 뭔가 불안합니다.”

그의 얘기를 풀어보면 이렇다. 앞으로 제주도 부동산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니 제주시나 서귀포 도심의 아파트를 사면 돈을 벌거나 차익을 노릴 수 있다. 이미 자녀 교육에 대비해 제주시 등에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몇 년 새 아파트 시세가 급등해서 돈을 벌었다는 증거가 있다.

25평짜리 아파트값은 지역편차가 있지만 제주시 근처에선 2억~3억원이라고 한다. 3년 전보다 2배 올랐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봐야 언감생심인 액수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로도 채울 수 없는 미래 불안감이 고조되는 건 전국 어디서나 똑같다. 감귤 밭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이참에 아파트를 장만하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을 할 만하다.

이들의 계산에 대한 이장의 생각은 불안 그 자체다. 땅값이 올랐다고는 하나 농토를 팔거나 융자로 아파트를 사면 그 이후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땅값 상승이 종잡을 수 없는데다 미래 생계수단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땅값을 고려할 때 일단 농토를 팔면 다시 그런 땅을 되살 수 없고, 새로 산 아파트에서 융자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감당할 소득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런 아파트붐이 새롭게 일면서 기존 아파트가 모자라자 아파트를 짓는다고 땅에 삽질을 하고는 선매하는 사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아줌마들보다 한발 앞선 제주도 토박이 지주들이 건축업자와 결탁하는 기획부동산이 이미 떴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후배 이장의 말을 듣고 내 머리를 스쳐간 생각은 “제주도에 드디어 카오스가 시작됐구나”였다. 제주도 시골 아줌마들이 90년대 강남식 재테크에 달려든 강남 아줌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 제주도가 뜨거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시장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다. 특히 고용친화적인 제주의 산업적 기반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시골 아줌마의 분석능력으로 부동산 자본의 거품이 몰고올 미래의 불안정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도지사 등 지역 정치 지도자들의 눈에 부동산가격 상승은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는 유권자들에게 지역의 가치 상승효과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제주도의 가치는 이 섬의 고유성과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게 토박이는 물론, 제주도에 살고 싶어 하는 외지인과 외국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지역발전은 어느 정도 부동산 붐을 유발할 수밖에 없지만, 순진한 아줌마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한다며 무분별한 투기에 관심을 쏟는다면 섬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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