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 구상나무가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으로 급격하게 쇠퇴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발간한 '제19호 조사연구보고서'(2019년)에 실린 '한라산 구상나무 보전전략 마련 연구'에 따르면 한라산 구상나무림(숲) 전체 면적은 2015년 636.0㏊로, 2006년 738.3㏊보다 112.3㏊ 줄었다.

특히 한라산 구상나무림의 ㏊당 평균 구상나무 개체 수 2028.3그루 가운데 1098.3그루(54.1%)만 살아 있고, 나머지 930.0그루(45.9%)는 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새롭게 출현하는 어린나무는 고사목 발생량의 28.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대량 고사하는 등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주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 구상나무 자생지 10개 지역에서 2018년 8월부터 12월까지 고사한 지 1년 이내의 구상나무 101그루를 표본으로 '연륜'(나이테) 분석을 통한 고사 및 쇠퇴 원인 규명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결과 눈에 띄게 나이테 생장이 위축된 시기는 제주에서 태풍과 가뭄 등 기상 이슈가 발생했던 시점과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2년 큰 폭으로 나이테 생장량이 감소했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 역대급 태풍으로 알려진 '볼라벤'이 발생한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앞서 2002~2003년 즈음에도 나이테 생장량이 크게 감소했는데, 태풍 '루사'(2002년)와 '매미'(2003년)가 발생한 시기다.

실제 표본 고사목 101그루를 분석한 결과 연륜생장량은 1989년 평균 1.27㎜에서 2018년 0.35㎜로 줄었다.

특히 2000년까지는 1.00㎜ 이상의 연륜생장량을 유지했지만, 2004년 이후 0.86㎜로 줄었다.

이후 점차 수세가 회복돼 2007~2011년 평균 1.00㎜ 이상 생장했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 내습과 2013년 극심한 가뭄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돼 2018년 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태풍 볼라벤은 2012년 8월27~28일 대한민국을 내습한 태풍으로, 당시 제주에는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39.9m에 달하는 바람이 불었었다.

강한 태풍으로 인한 구상나무 쇠퇴는 일본 자생종인 개분비나무(학명 Abies sachalinensis)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2019년 '한라산 구상나무 보전전략 마련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에서 토시야 요시다 교수(훗카이도대)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개분비나무를 고사시키는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라고 발표했다.

토시야 요시다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풍 내습 전 개분비나무 고사율은 태풍 내습전 1.0%, 태풍 내습시 25.6%, 태풍 이후 1~2년간 5.8%, 태풍 이후 3~8년간 2.0%다.

연구진들은 한라산 구상나무의 경우 태풍 내습에 의한 피해조사가 정량적으로 진행된 적은 없지만,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했던 세계유산본부 고정군 박사는 "그동안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와 쇠퇴에 관여하는 원인 규명을 위해 생리적 교란, 주변식생변화, 토양환경, 병·해충, 동물피해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 연구결과 강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도 아주 강력한 원인중 하나로 판단되면서 이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절멸위기종(threatened species)으로 지정했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지리산, 덕유산 등에도 분포하지만 제주 한라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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