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주년을 맞은 제주4·3희생자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제72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시작되기 전 이 곳의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제주도가 역대 최소 규모로 추념식을 봉행하기로 하면서 여러 사전 대응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우선 예년 같았으면 일찍이 4·3 영령에 참배하러 온 추모객들로 붐볐을 봉안관과 각명비원, 행방불명인 표석, 위패봉안실에는 발길이 드문드문했다.

일찍이 65세 이상 노인과 만 5세 미만 영·유아, 임신부, 만성 질환자, 면역 저하자 등 감염병 취약계층과 도외 인사들의 참석이 원칙적으로 제한된 탓이다.

택시기사 현창송씨(77·제주시 이도2동)는 "매년 4월3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이 곳에 오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혼자 오게 됐다"며 "오늘 현장에서 주차 안내 봉사를 하는 김에 아침 일찍 할아버지와 어머니 각명비 앞에서 간단히 참배했다"고 했다.

공원 내 주요 시설 출입구에는 발열 검사를 위한 열 화상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체온계와 마스크, 손 소독제가 비치돼 있었다.

추념식이 열리는 위령광장의 경우 '바로 입장'도 불가능했다. 사전 문진표를 작성해 확인받은 뒤 열 화상 카메라와 개인별 체온 측정을 마쳐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제주4·3 희생자 1만4363명 가운데 1만4256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 공원 내 어느 곳보다도 붐비는 위패봉안실도 오전 9시를 기해 폐쇄됐다. 이 공간은 추념식 직후 다시 개방돼 개인별 체온 측정 후 추모객을 받았다.

위령광장 내 좌석은 각각 1m 간격으로 배치됐다. 좌석 수는 단 150석으로 예년 참석자 수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좌석이 배정된 이들은 대부분 제주4·3 희생자 유족들로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이동을 최소화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일찍부터 자리를 지킨 서주희씨(46·제주시 아라동)는 "매년 가족들과 왔었는데 오늘은 사람도 없고 검사가 삼엄해 생소하다"며 "그래도 식이 취소됐으면 섭섭했을 텐데 참 감사하다. 저도 예방수칙을 잘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참석자들은 비록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4·3 영령에 대한 추념의 시간을 가졌다.

애국가는 제주4·3 유적지의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대체됐다.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합창단을 출연시키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해마다 추념식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잠들지 않는 남도' 역시 제창 없이 영상으로 대체됐다. 영상에는 제주4·3 희생자 유족들이 제주4·3 유적지를 배경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르는 모습이 실렸다.

특히 제주도는 이날 코로나19 여파로 불가피하게 추념식 참석 또는 개별 참배를 하지 못하게 된 유족들과 도민들을 위해 제주도 홈페이지에 '4·3 희생자 온라인 추모관'도 개설·운영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현재 이 온라인 추모관에는 무려 2만명이 헌화했고, 300명이 추모글을 남겼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전날 이 공간에 "한 자리에 모여 4·3 영령들을 기리지 못하지만 온라인 추모관을 통해 4·3을 기억하고 4·3 정신을 공유하길 바란다"며 "국민의 뜻과 힘을 모아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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