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성이 많아 ‘삼다도’라고도 불렸던 제주는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최근 20년간 치러진 총선 중 가장 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지만 여성 후보는 1명에 불과하다.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총선마다 여성 후보 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제주는 성비 불균형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치러지는 21대 총선에서 제주 3개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는 총 15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후보는 제주시 을 지역구의 민중당 강은주 후보가 유일무이하다.

반면 전국 여성 후보는 2012년 19대 총선 63명에서 20대 98명, 21대 211명으로 늘었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전체 후보 1109명 중 19%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주 여성 후보 비율 6.6%의 3배에 가깝다.

제주 선거판에서의 성비 불균형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2년 14대 총선부터 지난 20대 총선까지 일곱 차례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본선에 등록한 후보 81명 중 여성은 총 4명에 그쳤다.

14대, 18대, 19대 총선을 제외한 나머지 총선에서는 여성 후보가 한 명도 없이 선거가 진행됐다.

이처럼 본선까지 뛰는 여성 후보가 극히 드물다 보니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까지 된 경우는 없었다.

제헌국회 이후 72년간 20차례의 총선에서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이 전무한 광역단체는 제주를 비롯해 인천, 대전, 울산, 충북 등 5곳뿐이다.

다만 비례대표 국회의원 중 제주 출신 여성은 2명이 있었다. 2012년 19대 민주당 비례대표 장하나 전 의원과 2004년 17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현애자 전 의원이다.

이러한 제주 정치의 성비 불균형은 제주의 지역적, 문화적 특성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주 특유의 혈연, 지연 등을 강조하는 괸당 문화가 공직사회와 지방정가는 물론 일상까지 영향을 미쳐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강경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인지정책센터장은 “제주 여성은 해녀 등을 통해 노동, 경제를 맡는 강인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정치적인 영역인 제례에 있어서는 남성 중심으로 흘러온 역사가 있다”며 “이러한 성별 특성은 최근에야 몇몇의 여성 지역구 도의원이 선출된 오늘날의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강 센터장은 “제주는 일상적으로 괸당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며 “지역사회 정치를 이끄는 주민자치위원회, 청년회 등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참여하며 정치 훈련을 하고 정치계 진출의 발판을 삼고 있지만 여성은 기회가 아주 적은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 여성 제주도의원은 “사회적·제도적으론 여성의 대표성, 참정권 확대를 위해 많은 여성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는 공감이 있지만 현장은 많이 다르다”며 “현실 정치에서는 아직 여성 정치인에 대해 당선 가능성, 조직력 등을 낮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제주 여성 정치인 가뭄 현상은 여성 관련 정책 및 공약 부재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대다수의 후보가 여성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은 데다 제시된 공약은 출산·보육 등 특정 분야에 치중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는 이번 총선에도 이어져 후보들의 선거공보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국회 원내정당 5곳의 후보 8명 중 절반은 여성 관련 정책을 한 줄도 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이경선 제주여민회 대표는 “최근 n번방 사건이 터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은 선거공보에 성폭력 관련 공약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에 제주여민회는 여성 관련 정책을 만들어 후보들에게 수용해줄 것을 제안했다”며 “당선 이후에도 국회의원들이 공약을 실현하는지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총선의 제주지역 선거인수는 총 55만3198명이다. 여성 선거인수는 27만7240명, 남성 선거인수는 27만595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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