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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헝클어진 ‘올림픽과 일본’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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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위세 앞에 올림픽도 주저앉고 말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장이 지난 24일 전화통화로 오는 7월 24일 개막 예정인 2020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정부와 IOC 간에 오간 구체적 논의는 알 수 없지만 아베 총리가 연기를 요청하고 바흐 위원장이 동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와 바흐 위원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수그러지기를 기대하며 올림픽의 올해 개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따라서 올림픽 연기는 국제적 권위를 가진 IOC위원장에게도 멋쩍은 일이지만, 그보다는 2020올림픽에 정치적 의미를 많이 걸었던 아베 총리에겐 쓴맛을 안겼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슈퍼마리오 복장을 하고 깜짝 출현했을 정도로 올림픽에 대한 아베 총리의 집념은 유별했다. 아베 총리가 올림픽에 담은 기대는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로 실추된 ‘안전한 일본’의 이미지를 되찾고 ‘잃어버린 20년’이란 딱지가 붙은 일본의 장기침체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국민적 희망을 채워주고, 이를 계기로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고 싶은 개인적 야망이 있었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올림픽 발목을 잡을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올림픽 경기는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에 의해 1916년, 1940년, 1944년 등 3차례 취소된 적이 있지만 이번과 같이 전염병에 의해 연기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조짐은 있었다. 모기가 옮기는 지카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2016년 리우올림픽 경기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사실 2020도쿄올림픽을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3월 초부터 분분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탈리아를 감염사태로 마비시키면서 유럽으로 번지고 미국 및 캐나다의 확진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유럽과 미국의 주요 스포츠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스포츠는 경기 특성상 선수 간 접촉과 수많은 관중이 밀집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일본 여론도 연기하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17일 일본국민 63%가 “올림픽을 연기하는 게 좋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요미우리신문은 23일 “유권자 69%가 연기하는 게 좋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런 국제적 위기의식과 일본 국민의 우려에도 7월 개최에 매달린 아베총리의 행동은 정치적 의지로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는 아집 같은 게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 취소가 아니라 연기로 결정된 것은 아마 아베 총리와 바흐 IOC위원장의 이해관계, 수년간 기량을 닦으며 준비했던 선수를 포함한 세계 올림픽 가족들의 기대, 개최국으로서 긍지와 기대를 걸었던 일본국민들의 열망, 올림픽에 이해관계를 가진 회사들의 준비 등이 올림픽의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1964년 동양 국가로는 처음 도쿄올림픽을 개최했다. 그렇지만 일본과 올림픽의 관계는 그 역사가 꽤 길고 험난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경기가 열린 이래 근대 올림픽은 서유럽과 미국, 즉 백인 사회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서양문물에 경도되었던 일본은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1930년대부터 애썼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말로 포장된 세력 확장 정책이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될 무렵이었다.

일본은 1940년 올림픽 유치를 놓고 파시스트 국가 이탈리아와 경쟁을 벌였다. 막판에 무솔리니가 유치경쟁을 포기하자 1936년 IOC 위원회는 일본에 개최권을 부여했다. 일본국민이 자존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936년 히틀러의 개막선언으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이 나치의 선전장이자 인종주의가 판쳤고, 이에 경악한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은 1938년 일본이 촉발한 중·일 전쟁을 쟁점 삼아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했다. 일본에서의 올림픽개최가 서양의 간섭행위라고 생각하는 일본 민족주의자들까지 생겨났다. 1938년 일본정부는 자원을 중·일 전쟁에 투입해야 한다는 명분을 대고 갑자기 올림픽개최를 취소했다. IOC는 일본이 포기한 올림픽 개최권을 핀란드의 헬싱키에 부여했지만 개막을 몇 개월을 앞두고 소련이 핀란드를 점령하면서 헬싱키올림픽도 무산되고 말았다.

일본의 올림픽 개최의 꿈을 1964년 이뤄졌고, 당시 도쿄올림픽은 2차 대전 패전의 잿더미를 딛고 국제사회에 일본을 알리는 도약대가 됐다. 한국인들 중에도 당시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의 경기 실황을 라디오 중계로 들으며 응원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게 올림픽 개최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러나 24년 후 서울올림픽을 열었고, 다시 20년 후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개최했다. 이렇게 세계는 변한다.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올림픽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기간 중에는 전쟁을 하던 도시국가들이 휴전했고, 사형집행이 유보됐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올림픽을 이용하는 일은 허다했다. 1896년 근대올림픽이 열린 이래 올림픽은 정치권력에 의해 굴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친선, 연대(連帶), 페어플레이를 통한 상호 이해하는 올림픽 정신 위에 평화롭고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올림픽운동의 지향점이다. 근대올림픽을 창시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숭고한 기사도정신’에 비유했다.

지금 바이러스 앞에 세계는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노골적인 국가 이기주의가 판치는가 하면 국제사회가 연대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자는 휴머니즘의 움직임도 볼 수 있다.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는 여러모로 달라질 것이다. 준비한 올림픽을 1년 후 개최하는 데는 상상할 수 없는 물질적·정신적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비록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지라도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는 도쿄올림픽이 되도록 ‘숭고한 기사도 정신’을 집단적으로 발휘했으면 좋겠다.

2021년에 열리는 2020도쿄올림픽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잘 안 되면 큰일이다. 이는 바이러스가 내년까지 창궐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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