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40년 만에 제주도청에 있던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을 전격 철거하면서 여전히 제주에 남아 있는 전두환의 흔적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주도는 22일 오전 도청 민원실 앞 공원 끄트머리에 있던 한 표지석을 완전 철거했다. 이틀 전 한 시민의 제보를 받고 황급히 뒤집어 놓았던 그 표지석이다.

비자나무 한그루 아래에 박혀 있던 이 표지석 상단에는 한자로 '기념식수 대통령 전두환 1980. 11. 4'라는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를 최초 확인할 당시 도 관계자들은 상당히 당혹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록상으로는 이 공원에 역대 제주도지사 명의의 기념식수 표지석만 설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이 표지석은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고 1980년 9월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이 지방 순회 방문차 제주를 방문했을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이규이 전 지사가 기념으로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는 우선 기념수인 비자나무의 경우 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두되, 표지석을 도청의 한 창고에 옮겨 두는 방식으로 철거했다.

도는 문제의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만간 행정안전부의 의견을 구한 뒤 폐기 여부 등 최종 처리 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부우기 도 청사관리팀장은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전두환 관련 시설물을) 철거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고, 무엇보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제주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도민 정서를 고려했다"며 철거 배경을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한쪽에 설치돼 있었던 전두환 기념식수 표지석 역시 지난해 자체 공사 과정에서 사실상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표지석은 전두환이 1984년 5월24일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개관식에서 비자나무를 식수한 것을 당시 박물관 측이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던 것이다.

현재 이 표지석은 관람객의 시야에서 벗어난 별도 공간에 옮겨진 상태다.

다만 과거에 대통령 지방 공관으로 쓰였던 현재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에는 여전히 전두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이 곳 입구에 서 있는 동백나무 한그루 아래에는 한자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 기념식수 1984. 5. 24'라는 문구가 새겨진 표지석이 버젓이 설치돼 있다.

이 뿐 아니라 도가 관리하고 있는 도서관 내 '대통령행정박물전시실'에는 전두환이 제주를 방문할 당시 했던 발언과 현장 상황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한쪽에는 전두환이 썼던 지팡이까지 보존돼 있다.

'제주를 얘기한 역대 대통령' 벽면 전시물에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도는 세계적인 명당임에 틀림 없다"며 "가파도와 마라도를 개발해 외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만들면 좋겠다"는 발언도 적혀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제주도민에게 동백나무가 어떤 의미냐. 국가 공권력에 희생당한 제주4·3 영령을 기리자는 의미 아니냐"고 따져 물으며 "평소 바로 그 아래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걸 지켜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도 관계자들은 "부서 간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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