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의붓아들 사망사건과 장기 미제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이어 또 한번 직접증거 없는 사건에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에는 1심 재판에서 유죄였다가 항소심에서 뒤집힌 사례다.

60대 남성이 한밤중 남의 집에 침입해 흉기로 금품을 빼앗고 1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한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인데 검찰이 엉뚱한 증거를 제시하는가 하면 경찰이 결정적인 증거(흉기)를 허술하게 다룬 사실도 드러났다.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왕옥보)는 특수강도강간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A씨(64)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7월8일 오전 2시13분쯤 제주시 한 집에 몰래 들어가 자고 있는 B양(19)에게 흉기로 위협하며 금품을 요구하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목격한 인상착의와 인근 CCTV(폐쇄회로)에 찍힌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인상착의가 비슷하다고 인정했다.

특히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 칼날 부위에서 DNA 증거인 Y-STR 유전자형 20좌위 중 A씨와 동일한 16좌위가 검출된 점을 주목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피해자가 범인의 인상착의를 명확하게 목격하지 못했고 CCTV 화질이 좋지않아 영상 속 인물이 A씨라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제시한 가장 유력한 증거인 흉기 유전자 감정결과도 신뢰도를 낮게 봤다.

Y-STR 유전자 분석법만으로는 같은 인물인지 가려내기에 한계가 있고 흉기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Y-STR 유전자만 검출된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범행 현장에 출동한 모 경찰관의 Y-STR 감정결과 해당 흉기의 유전자형과 15개 좌위가 일치했다.

이 경찰과 A씨의 Y-STR 유전자 좌위는 17개나 일치했다.

해당 증거가 외부에 오염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피해자 가족 진술에 따르면 범행 현장에는 10명 이상(중복 출입 포함)의 경찰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들락날락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철수한 뒤 6~7시간이 지나서야 피해자 가족에게 흉기를 넘겨받아 유전자 감정을 의뢰했다.

2심 재판부는 이런 이유로 Y-STR 유전자형이 실제 범인의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고 다른 원인으로 증거 가치가 오염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할 증명력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당시 행적에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을 했거나 과거 특수강도 전력이 있다는 점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범인임을) 증명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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