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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기본소득 논란과 알래스카 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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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수습 정책의 하나로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는 것을 계기로 기본소득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핀란드가 일부 계층을 상대로 실험지급을 하다가 중지했을 뿐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나라는 없다. 국가 단위는 아니지만 미국 알래스카주가 석유수입 배당금을 주민에게 지급하고 있어 한국의 국민기본소득 논쟁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의 인용 사례가 되고 있다.

1986년 여름 미국 알래스카로 유전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다. 푸르도베이 유전에서 하루 160만 배럴의 석유가 터져 나오면서 알래스카 경제는 석유 위를 헤엄치다시피 할 때였다.

알래스카 최대 도시 앵커리지를 중심으로 한국 교민 약 5000 명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 호텔 등에서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로 고단한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말에도 일을 하는 교민들이 즐겨 삼는 화제가 있었다. 알래스카 주정부가 연말에 주민에게 지급하는 석유 배당금 얘기였다. 이민 온 지 몇 년 안 된 교민의 말이 메모에 남았다. “작년 우리가족 3명이 주정부로부터 400달러씩 받았습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도 지급됐습니다. 알래스카 참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그의 가족이 받은 돈 1200달러는 당시 이민 노동자들로서는 월급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으니 흥분할 만했다.

1970년대 푸르도베이 유전에서 석유가 생산되자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회사로부터 거둬들이는 로열티, 즉 오일머니로 재정이 갑자기 넘쳐나게 됐다. 주 정부는 이 돈을 잘 쓸 방도를 궁리한 끝에 “유전은 언젠가 고갈될 것이니 미래세대를 위해 돈을 비축해야 한다”는 기본 정신을 정하고 석유수입금을 기초로 한 영구기금(Permanent Fund)을 만들기로 했다. 동토(Permafrost)처럼 마르지 않는 기금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매년 석유 로열티로 들어오는 돈의 25%를 영구기금에 차곡차곡 적립해서 계속 불어나게 하고 그 기금을 투자재원으로 운용해서 창출된 이자와 수익을 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일정액씩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기본 원칙을 주 헌법 조항에 담았다.

1977년 73만4000 달러로 출발한 기금은 2020년 4월 현재 625억 달러로 불어났다. 1982년 처음으로 1000달러의 배당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배당금은 해마다 변한다. 작년 배당금은 1606달러였다. 알래스카 주민 수는 약 70만 명이다.

기금규모가 크다보니 정치인들이 딴 생각을 품을 때가 있었다. 1999년 유가 하락으로 주정부 재정이 위기에 처하자 주지사가 앞장서서 영구기금의 일부를 재정적자 보전에 전용하는 방안을 제시해서 선거직 공직자의 절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주민 84%가 반대했다. 주민들이 배당금, 즉 기본소득에 대한 애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이 배당금이 주민에게 지급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영향에 신경을 쓰고 조사한 것이 두 가지다. 첫째 주민들의 근로의욕 감퇴에 줄 영향이고, 둘째 약물복용 및 음주에 의한 범죄증가 가능성이었다. 2018년 보고서에 의하면 배당금지급이 총 고용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9년에 조사한 것을 보면 약물 복용사건은 배당금 지급 다음날 17%증가했고 지급 후 1개 월 동안 약 10%늘어났다. 그러나 재산범죄는 오히려 8% 감소했다.

알래스카 배당금은 요즘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는 배경이 다르다. 석유자원이라는 확실한 부(富)를 토대로 40년째 유지되고 있으며, 인구 7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사회다.

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나오는 화제 중 하나가 국가에서 주는 재난지원금 쓰는 얘기다. 코로나19 정부 재난지원금이 가구원 수에 따라 40만원, 60만원, 80만원, 100만원씩 카드로 입금되고, 여기다 지자체마다 다시 지원금을 주고 있으니 개인마다 주머니가 채워진 느낌을 갖게 된다. 처음 재난기본소득 얘기가 나왔을 때 “정부가 현금을 살포하니 나라가 망하나 부다”고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동네 가게는 되고, 대형 마트는 안 되더라”는 식으로 돈 쓰는 방법을 침을 튀겨가며 말하는 것을 보며 공돈의 위력을 가늠해 보게 된다.

며칠 전에 내가 거주하는 관할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개인종합소득세 신고를 전화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에서 보낸 통지서 보셨죠? 거기 적힌 대로 선생님께 환급해드릴 액수가 XX만원인데 우체국에서 찾아가도록 대신해서 신고해도 좋습니까?” 코로나19 감염 우려 덕택인지, 국세청의 행정 서비스가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하는 세금신고는 너무 복잡하고, 세무서에 가면 긴 줄을 서고 기다려야 했는데 말이다.

국세청이 자상한 서비스는 좋은 데, 재난지원금을 주고 난 다음 국가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염려가 생긴다. 아마 재난지원금이 가계에 큰 도움이 되고 기본소득제도가 생기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돈은 받았지만 세금을 많이 내게 될 것이 염려스러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기본소득 문제가 다음 대통령선거의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기본소득 논의는 이재명 경기지사 등 민주당 정치인들이 선점하고 있는 이슈지만 총선 이후 통합당도 논의에 가세하기 시작했으니 정치권 이슈로 뜨거워질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의 이슈 중 하나가 일자리 감소이고 이를 극복하는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기업인들도 더러 생기고 있다. 민간연구기관이 지난 4월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2%가 나왔다. 기성관념으로 보면 놀라운 수치다.

인간은 일을 통해 단순히 소득만 올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성취감을 이루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낀다. 이런 전통적 가치관에서 볼 때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가가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 같은 기술적 변화로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질 경우 기본소득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일자리가 줄어들더라고 국가의 생산성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일하지 않아도 국가가 보장해주는 기본소득과 일하고 소득을 얻는 근로소득의 논쟁은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가 없겠지만 철학적 논의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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