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또는 직업은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수단이다. 둘째, 일자리는 자신의 능력을 발현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수단이다. 셋째, 일자리를 통해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다. 일자리란 단순히 호구지책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청년 실업 이슈가 나올 때마다 암울한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 통계는 12.5%였다. 전에 없던 높은 수치도 놀랍지만 주위에서 들려오는 경제 상황과 지식산업 발전 방향이 청년 취업에 더욱 부정적 그림자를 비춘다.

제조업 국가로서 일자리를 꾸준히 창출해오던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조선·철강 산업이 구조적 쇠퇴기를 맞은데다 수출부진의 징조도 확연하다. 뒤늦게 상승세를 탄 자동차 산업 역시 지구환경 문제와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앞날이 심히 불확실하다. IT산업은 역동적인 변환기를 맞고 있으나 AI시대의 도래로 국가 중심산업으로서의 대량고용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로봇과 인공지능의 융합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버릴 것이라는 전망만 난무한다. 지난 3월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기사 이세돌의 바둑대결로 한국인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에 둘러싸여 있다. 사실 기대보다는 공포심이 진하다.

얼마 전 미국잡지에 “로봇이 월가를 침략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월가의 대표적 증권회사인 골드만삭스가 ‘겐소’라는 일본계 AI증권 소프트프로그램을 회사경영에 도입한 결과, 회사의 인력수요 구조에 큰 변화가 예고된다는 내용이었다. 일반 사무직이 하는 일은 물론 세계시장의 시장분석과 고객관리에 이르기까지 'AI 겐소'가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특히 증권회사의 핵심인력이라 할 수 있는 거래인 역할을 대행하는 겐소 소프트웨어의 활약으로 프로그래머 1명이면 10명의 거래인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게 겐소 개발회사나 골드만삭스의 예측이다.

골드만삭스 상층부와 겐소 측은 10년 이내에 이 회사의 인력 30~50%가 겐소프로그램에게 밀려 쫓겨날 판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에서는 아무도 그런 얘기를 거론하지 않고 잠재적 위기감으로 삭히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20년 이내 47%의 월가 금융 산업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보기까지 한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월가뿐 아니라 법률이나 의료 분야의 고급 일자리, 이를테면 변호사와 의사의 역할까지 뒤흔들어 놓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문기사를 쓰는 로봇까지 실제 등장하여 언론 종사자까지 위협한다니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노동시장을 변화시킬지 모른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제4차산업혁명 담론은 최근 우리 사회에도 범람한다. 인간 생활이 첨단화되고 편리해질 것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크다. 예를 들면 ‘겐소’같은 고도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출현한 세상에서 산업의 과실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결국 돈을 벌어가는 것은 인공지능회사이고 고소득 일자리는 극소수의 인공지능프로그래머이다. 과거 월가와 실리콘밸리와 같이 고소득 지식노동자들이 범람하는 세상은 바랄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가 지난 수세기간 최고 가치기반으로 생각해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올바로 작동할 수 있을까.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으킬 노동시장의 대변혁에 속수무책인 채로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학의 경영학 교수들은 취업에 목맨 대다수 제자들을 향해 AI시대의 구체적 취업 문제를 어떻게 조언해줄 것인가. 무조건 AI프로그래머가 되든가 로봇이 할 수 없는 분야를 찾으라고만 말해서 될 일인가.
인공지능 시대는 단순히 생각하면 일자리의 위기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 정치인들은 로봇의 일자리 침략에 떨고 있는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비전은 산업의 변화와 혁신일수도 있고, 새로운 제도의 창조일 수도 있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한 정치인의 구체적인 대답을 듣고 싶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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