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는 한국전쟁 당시 50만명의 장병을 배출하며 승리의 기반을 마련한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의뢰로 한국자치경제연구원이 맡은 '제주 육군 제1훈련소 구술조사 용역(2019년 4~12월)'에는 당시 교육받은 기간사병과 훈련병 들의 구술을 통해 4.3 사건 직후 전쟁에 휘말린 제주도민들의 아픔과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담겼다. 뉴스1제주본부는 두차례에 걸쳐 용역에 담긴 참전 생존자들의 증언을 소개한다.
 

6·25 전쟁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비극이다.

그러나 전쟁통에서조차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훈훈한 얘기들,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는 일화들도 있다.

최남단 제주에서 참전해 인민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같은 고향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신 모 할아버지의 경험담이다.

신 할아버지는 최전방 전투 중 인민군을 포로로 잡았다.

생포한 적군은 놀랍게도 북한이 아니라 남한 그것도 자신이 태어난 제주가 고향이었다.

신 할아버지는 "부산 전매청에서 일하다 군대가서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이번에는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우리에게 포로로 잡힌 거였다"고 설명했다.

신 할아버지는 "고향이 제주라고하니 귀가 솔깃했다. 제주에서도 애월면(현재 애월읍) 금성으로 내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며 "그래서 내가 건빵주고 후송했다. 나중에 제대하고 보니 포로수용소에서 살아서 석방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화장실에서 쓰고 있는 모자를 훔쳐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지 모 할아버지(91)는 "변소에 앉아있으면 모자를 벗겨 가버린다. 자기 모자를 잃어버리니까 벗겨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 할아버지는 "그러니까 화장실에서도 모자를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군인은 장교 모자를 벗겨서 썼다. 사병들이 장교 모자를 쓴 그 군인을 보고 경례를 했다"고 전했다.
 

훈련병 사이에서는 훈련소에서 질병 등으로 사망한 훈련병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터에서 누군가 살아돌아서 왔다는 소문도 회자됐다.

불 사르기 직전 화장터에서 죽은 줄 알고 버려진 훈련병이 기어서 살아나와 마을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얘기다.

교육 환경도 열악했던 시절.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대대장과 함께 지낸 군인의 사연도 있다.

오 모 할아버지(88)는 "미국에서 무전기를 보냈는데 다 영어로 돼있었다. 무전기를 써야되니까 '중학교 다니던 사람 손들어'라고 해서 무전기에 써진 걸 읽었더니 소총 소대에서 빼고 대대장 밑에서 다녔다"고 회상했다.

전 모 할아버지(88)는 자신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는다.

전 할아버지는 "훈련을 마치고 부산으로 가기 전 면회에서 어머니가 '훈련 잘 받고 군에 잘 갔다와라. 매일 비노라'라고 했는데 후에 소식을 들으니 매일 정한수 떠놓고 빌었다더라. 어머니 덕에 죽지 않고 살았는가 그런 마음이 든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제주를 떠나 춘천 보충대로 가다가 수도사단 107포대로 차출됐다. 다음날 아침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어젯밤 우리와 같이 있던 훈련병들이 전투에서 죽어 내려온 것이었다"며 "아, 내가 이거 참. 우리 어머니가 많이 도와줬구나. 생각이 그때 들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