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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바람에 흔들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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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경찰의 가혹행위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이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경찰관이 무릎으로 목을 조이자 “숨을 쉴 수 없다”고 절규하며 죽어간 흑인에 대한 동정과 분노가 흑인은 물론 백인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 시위는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이름을 얻으며 사회 운동으로 미국 방방곡곡으로 확대되었고 영국 등 유럽 국가에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흑백 버스좌석 분리에 반기를 든 흑인 여성 재봉사 로자 파크 사건으로 촉발한 1960년대 흑인민권 운동에 버금가는 차별철폐 운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법적 차별은 없어졌지만 사회 시스템과 관행 속에 배어 있는 흑인차별을 씻어내야 한다는 흑인들의 본원적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흑인 논객이 진보를 표방하는 백인들을 향해 외쳤다. 말로만 평등을 주장하지 말고 차별철폐 운동을 벌이는 흑인단체나 흑인 정치인들에게 돈을 기부해보라고. 백인 주류의 미국 사회를 아프게 찌르는 대목이다.

미국 국가 건설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의 목이 잘려 나가고 남북전쟁 때의 남부 연방의 향수를 간직한 남군 깃발을 내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영국의 시위 군중들은 16세기 노예무역상으로 20만 명의 흑인을 서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수출했던 에드워드 콜스톤의 동상을 그의 고향 브리스톨에서 끌어내려 바다에 던졌다. 미국 인종차별주의의 근원을 노예제도에서 찾아 그 역사를 단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의 흑인차별은 사회 시스템 속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기업, 교육, 스포츠, 예술 공연계에서 차별받고, 심지어 학계에서도 백인 주류 학자들이 흑인 등 소수민족 출신 학자의 논문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새롭게 제기된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이 특별히 충격을 주며 논란을 일으킨 곳이 미국 대중문화의 기둥인 영화산업이다. 1939년 제작되어 미국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와 세기의 흥행기록을 세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미국의 영화채널 HBO맥스의 전송 목록에서 임시 삭제된 사건은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충격과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 ‘공전의 히트’를 쳤다. 마가레트 미첼이 1936년 내놓은 소설은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4000만권 이상이 팔려 성경을 제외하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제작자 데이빗 셀츠닉이 1939년 만든 영화는 크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를 주인공으로 발탁한 게 크게 어필해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8개 부분을 휩쓸었다. 미국 영화 100선 중 10대에 뽑혔고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립영화등기부’ 등재 작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개봉 때부터 일부 비판적 평가가 나왔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백인 소유 농장을 배경으로 엮어진 스토리는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남부의 정서를 강하게 담았고, 흑인 노예를 백인에 충성하는 인물로 정형화해서 노예제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백인 주류의 미국사회에서 이 영화가 워낙 작품성과 흥행에서 최고의 미국영화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비판은 들리지 않았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흑인 영화시나리오 작가 존 리들리가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LA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 영화가 유색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었고 남북전쟁 이후의 남부 사회를 미화했다”며 “HBO목록에서 내려놓으라“고 주장했다. 시위 분위기에 압력을 느낀 HBO는 목록에서 지웠다가 흑인 영화인의 역사적 맥락을 첨부한 설명을 달고 다시 목록에 넣기로 결정했다.

흥미롭게도 중국에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논란은 활발했던 모양이다.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중국의 웨이보(微博)에서 10일까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논쟁에 접촉한 회수가 6300만 회에 이를 정도로 중국인의 관심이 높다”면서 “HBO조치는 극단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네티즌들의 메시지는 “차별을 반대하는 것이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어쨌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피소드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정치나 인권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 분야에 깊숙이 영향을 줄 것임을 암시한다.

미국인들은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흑인 오바마 대통령을 2008년 선출했고 그 뒤를 이어 인종주의적 편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2016년 선출했다. 트럼프의 인종적 편견이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의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11월 대통령선거의 귀추가 주목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며 그저 명작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인들이 이제 “흑인이 이 영화를 보면 나와 같은 정서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보는 것도 달라진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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