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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제주대 캠퍼스의 밤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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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자락 30만 평에 자리 잡은 제주대학교 캠퍼스는 두 종류의 가로수가 봄과 여름을 상징한다. 3월 말에 피는 벚꽃 길과 6월에 꽃피는 구실잣밤나무 가로수다. 사나흘 활짝 피었다 낙화하는 벚꽃보다는 사시사철 짙푸른 구실잣밤나무 그늘에 더 점수를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 구실잣밤나무가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6월 17일자 ‘제주대신문’에 구실잣밤나무 이야기가 실렸는데, ‘봄·여름의 애물단지 구실잣밤나무’라는 제목이 붙었다. 제주대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좋은 가로수 숲길인데, 왜 이런 부정적인 기사가 나왔을까 하고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꽃 냄새 때문이었다. 구실잣밤나무는 6월이 개화기인데 “악취가 나니 잎과 줄기를 잘라내서 냄새를 제거해 달라”는 학생들 불만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상록수인 구실잣밤나무는 낙엽수인 일반 밤나무와 생긴 건 전혀 다른데 꽃피는 시기와 꽃 냄새가 비슷하다. 소위 밤꽃 향기다.

학교 당국자의 고민스러운 반응이 흥미롭다. “악취 역시 생육과 관련된 것이고 그 생육 때문에 나무를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짧은 기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계절의 향기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유서 깊은 가로수를 잘라낼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울창한 ‘비자림로’ 삼나무 숲을 베어내어 전국적인 항의 소동을 일으켰던 일과는 대조를 보인다.

모든 꽃은 향기를 내뿜는다. ‘향기’의 사전적 의미는 ‘좋은 냄새’를 뜻한다. 하지만 밤꽃 냄새는 향기라고 하기엔 비릿하고 좀 역겹다. 속설에는 남자의 정액 냄새에 비유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밤꽃 향기를 ‘무겁다’고 표현하고 성분분석을 통해 정액성분의 물질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 냄새가 곤충을 유혹하는 수단인지 또는 쫓아내려는지 건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사람들이 가까이하기 싫은 향(香)인 것만은 분명하다.

구실잣밤나무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상록수다. ‘조밤낭’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습기가 많은 냇가 절벽 틈에 잘 자란다. 가을이 지나 낙엽이 져도 구실잣밤나무의 상록수림이 한라산 계곡을 따라 띠처럼 산 아래로 뻗어 있는 모습은 제주의 독특한 자연경관이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먹을 게 쌓여 있어 요즘 아이들은 이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과거 제주도 아이들은 이 나무 열매를 따 먹으러 절벽 위의 조밤낭 가지에 올라가는 모험을 감행하기 일쑤였다. 그 당시 소년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조밤낭’은 향수의 수목이다. 초여름 구실잣밤나무의 꽃 냄새가 상쾌한 향기는 아니었지만 악취도 아니었다.

원래 동네 냇가나 한라산 계곡에 살던 구실잣밤나무가 도시로 내려온 것은 현대적 도시계획이 시행됐던 1970년대부터였다고 한다. 외래 수목인 플라타너스와 토종인 구실잣밤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다. 관광객이 제주공항을 나오면 인상적으로 보이는 가로수가 바로 구실잣밤나무다.

요즘 청소년들은 갖가지 인공 조미료나 인공 향에 익숙하다. 화장품 음식물에서 좋은 향기를 언제나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과거 웬만하면 참고 지냈던 식물의 향기도 이제 참을 수 없는 악취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맛과 향이 고급스러워지는 시대를 사는 현대 도시인들은 주변 환경에 더욱 까다로워지는 것 같다. 구실잣밤나무가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면 캠퍼스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구실잣밤나무 꽃 냄새가 악취일지라도 몇 주간 계속될 뿐이다. 이 나무가 만드는 가로수 숲이 사시사철 캠퍼스를 아름답고 운치 있게 꾸며준다면 밤꽃 냄새도 자연의 향기로 받아들일 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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