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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한마디의 파장 “나는 대만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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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스 타이완런(我是臺灣人)”

체코 상원의장이 던진 중국말 한마디에 대만 해협에 파란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 어느 누구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던 사람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었을 것이고, 중국의 위협을 안고 사는 대만인들은 오랜 국제적 고립감에서 잠깐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을 법하다. 반면 중국은 격노하고 있으니 그건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대만 입법원(국회) 발언대에 선 밀로시 비스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은 “나는 대만인입니다”라는 중국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대만 입법 의원들이 기립 박수했고 세계의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과거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연설이다. 그렇다. 1963년 공산 동독의 베를린 봉쇄로 공수(空輸)에 생명 줄을 걸었던 서베를린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 시민들을 향해 연설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 독일어로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인입니다)”라고 말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광경을 연상시킨다. 분명 비스트르칠 의장은 대만에 대한 지지를 강조하기 위해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체코의 권력 서열 2위 비스트르칠 의장은 프라하 시장을 비롯해 30여 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5일간 방문하면서 차이잉원 총통과 회담을 갖고 입법원에서 대만인을 향해 연설함으로써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체코가 어떤 나라인가. 인구 1000만 명밖에 안 되는 동구권의 작은 나라다. 그럼에도 체코는 1968년 공산당 억압 체제에 지식인들이 반기를 들어 민주와 자유의 체제 개혁을 진행하다 소련의 침공으로 좌절된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고, 냉전 붕괴 후 민주 정부를 수립한 무혈 ‘벨벳혁명’의 나라다. 이런 동구권 국가가 대만에 공개적으로 동조하고 나섰으니 중국 공산당은 상당히 아플 것이다. 대만의 기를 살려주고 외교적 파장을 만만찮게 일으킬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체코 상원의장이 중국에 이런 도전을 한 것일까.

체코 정치는 중국 문제를 놓고 실용주의 노선과 인권주의 노선 등 두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다. 밀로스 제만 대통령이 이끄는 실용주의 노선은 “체코 경제를 위해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반면 비스트르칠 상원 의장이 주도하는 인권주의 노선은 “대만은 체코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상징하며 중국에 무조건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문제에 대한 체코의 외교 정책은 1995년 유엔총회에서 뜨거운 이슈였다. 당시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대만에 유엔회원국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대담하게 주장했다. 1972년 유엔이 대만이 가졌던 유엔회원국 자격과 안전보장이사회상임이사국 지위를 박탈하여 중국에 부여할 때, 미국은 대만의 유엔회원자격은 남겨주자는 결의안을 냈으나 유엔총회가 부결했다. 따라서 미국은 하벨의 제안을 내심 반겼지만, 이 연설로 중국과 체코는 오랫동안 사이가 안 좋았다.

반체제 극작가로 ‘프라하의 봄’에 가담했던 하벨은 1989년 냉전이 붕괴될 때 ‘벨벳혁명’을 이끌어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 됐고,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독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벨벳이혼’을 마무리한 인물이다.

체코 정부가 친 중국 노선으로 기울어진 것은 2013년 출범한 밀로스 제만 대통령 정부가 경제적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다. 그러나 중국의 체코에 대한 투자 약속은 실행이 지지부진했다. 이러자 중국 비판론이 힘을 얻게 되었고, 야당 출신으로 새로 당선된 프라하 시장은 ‘프라하-베이징 자매도시’ 결연을 폐기하고 베이징 대신 타이베이와 결연했다.

올해 비스트르칠 상원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구체화하자 제만 대통령 진영은 프라하주재 중국대사를 끌어들여 상원의장의 방문을 좌절시키도록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비스트르칠 의장은 단호하게 대만 방문을 강행했고, 이로 인해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각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유럽을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체코 상원 의장의 대만방문을 “공개적인 도발이며 비스트르칠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이 부장의 이런 언급에 유럽 국가들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어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으로서는 오히려 짐이 될 판이다.

중국이 체코를 보복할 방법은 외교관계 단절, 무역거래 제한, 항공운항 규제, 중국인의 체코여행 제한 등이 있지만 사실 체코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워낙 낮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로 여행이 거의 중단된 상태라서 중국 관광객 제한도 효험이 없게 생겼다. 더구나 지나친 경제 보복은 친중국파인 제만 대통령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체코의 대통령과 상원이 갈등을 빚도록 이간질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구매력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국민총생산(GDP)은 미국을 앞지른다. 중국의 영향력을 의식해 큰 나라들도 대놓고 대만과 공식교류를 피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 깊숙이 위치한 체코가 중국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하나의 중국정책에 도전하고 나섰으니, 중국에게 체코는 목 깊숙이 걸린 조그만 생선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됐다. 이건 중국의 입장이나 국제정치의 시각에서 본 관찰이다.

체코 정치인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프라하의 봄’ 정신이 이번 해프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하벨의 영향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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