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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불타는 캘리포니아
[자료] 김수종 위원 © News1
“누군가는 불로 세상이 끝날 거라고 하고
누군가는 얼음으로 끝날 거라고 한다.“

위의 시구(詩句)는 한국인에게 ‘가지 않는 길’로 잘 알려진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불과 얼음’(fire and ice)의 첫 부분이다. 이 시의 시상(詩想)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신곡은 인간이 죽은 후 저승 문을 통과하는 순간 펼쳐질 사후 심판의 세계를 암시하는 중세 서사시다. 그런데 프로스트의 ‘불과 물’을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로 야기되는 인류의 존재론적 위험으로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산불로 야단이 난 캘리포니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후변화의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다. 지난 8월부터 캘리포니아 전역 7000여 곳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산불은 기후변화로밖에 달리 설명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불이 바람을 타고 마을을 덮치며 주택과 자동차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목격한 주민들은 ‘inferno'라고 한탄한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이르는 말이다.

산불이 휩쓴 후 잿더미로 변한 땅이 330만 에이커, 약 4억 평이다. 건조한 사막성 기후대에 속한 캘리포니아는 원래 산불이 많다. 하지만 산불 피해 면적이 지난해보다 3배나 넓다. 주택 등 건물 6300채가 소실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완벽한 대피 작전에도 불구하고 2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간접피해도 막심하다. 연기, 재, 열파가 퍼지면서 공기 오염에 의해 수백만 명이 호흡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TV뉴스에 전해지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은 초현실적이다. 연기로 햇볕이 차단되어 대낮인데도 하늘은 짙은 오렌지색으로 변했다. 으스스한 풍경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티모시 에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화성 같은 하늘색깔을 본다”고 표현했고, 영국 신문 텔레그라프 기자는 “종말론적 광경”이라고 묘사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미국 서부 전체가 산불에 휩싸여 있다.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등에서도 피해 규모가 기록적이다. 각 주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산불 지도를 보면 북쪽의 시애틀에서 남쪽의 샌디에이고에 이르기까지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심한데다 대규모 산불로 미국 서부 주민들은 이중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기록적인 대규모 산불에 직면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우후죽순처럼 제기되고 있다. 각종 데이터에 의해 캘리포니아 수자원의 핵심을 이루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겨울철 적설량이 현저히 줄어들고 연중 건조한 날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은 여기 와서 보아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화재 현장에서도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외친다. 기후변화를 “중국이 사기극”이라고 무시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기후변화 이슈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불이 확산되는 데도 불구하고 오래 침묵을 지켰던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전 산불재난 지원문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들(캘리포니아정부)은 내 말을 안 듣는다. 숲속에 떨어진 잎사귀와 가지를 치우라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트럼프는 14일 선거운동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간다. 재난 지원금을 줬다고 생색이야 내겠지만 캘리포니아주도 트럼프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다. 원래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표밭인데다 이곳 출신 연방 상원의원 카멀라 해리스가 민주당 부통령 후보다. 승자독식의 선거인단 선거에서 캘리포니아 55표는 전부 조 바이든이 가져갈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표도 안 나오더라도 경합주인 애리조나주나 네바다주에 힘을 쏟아 선거인단을 확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캘리포니아 산불은 지난겨울 호주의 대형 산불과 더불어 지구가 불에 의해 타들어가는 기후변화의 제1막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로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프로스트의 시구를 마음속에 새기며, 이제 인간은 자연 앞에 겸허해져야만 한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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