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세계의 보물섬, 국제자유도시, 세계자연유산…. 당신은 제주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제주는 전국민의 이상향이지만 때로는 낯설게 다가온다. 제주는 지리적 특성상 타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풍습과 문화, 제도, 자연환경 등을 지녔다. 뉴스1제주본부는 제주와 관련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보고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제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독자라면 제보도 받는다.

"한 마을에 7살 아들을 둔 가난한 부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구걸하러 떠나고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아들만 죽고 어머니는 살아남았다."

1749년 정언유 목사가 제주에서 재임하던 시절 경험을 기록한 '탐라별곡'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제주사람들의 타 지역 방문을 차단하는 조선 정부의 출륙금지령으로 제주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최근 몇년 사이 제주살이 열풍이 불면서 이주민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인구유출은 여전히 제주도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그런데 인구유출은 제주의 근대나 현대사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수백년 전인 조선 후기에도 제주도의 인구유출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제주특별자치도지(2019)' 중 '조선 후기 출륙금지령과 경제의 붕괴(양정필 제주대교수)'에 따르면 조선 후기 16세기에도 먹고살기 힘들어진 도민들이 하나둘씩 제주를 떠났다고 한다.

제주를 떠나는 도민들이 늘어나면서 두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제주를 지킬 장정의 수가 줄어들어 국방 문제가 생겼고 또 다른 하나는 임금에게 바쳐야할 제주 특산물이 제대로 조달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1629년 조선 정부는 출륙금지령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공무 이외에 개인적인 제주도민들의 본토 왕래를 금지한 것이다.

이전에도 섬이라는 제약을 받았던 제주도는 출륙금지령 이후 외부와 교류가 완전히 차단됐다.

본토와의 교역이 중단되면서 부를 축적할 기회가 사라졌고 토지가 척박한 제주에서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곡식과 의복 생산에도 한계가 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제주도민들은 흉년이 들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정언유 목사의 탐라별곡에는 "거리마다 굶주린 백성들이 목사가 탄 가마를 붙잡고 우리 생명이 나라에 달렸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정 목사가 묘사한 기록 중에는 9살 아이가 굵주림을 참지못하고 연못 물로 배를 채우려다 빠져죽은 사건도 있다.

정부가 흉년마다 곡식을 내려보내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였다.

이 출륙금지령은 1840년까지 200년 넘게 이어지면서 제주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더더욱 폐쇄적이 돼버린다.

21세기에 들어선 제주는 이제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와 이주민, 관광객으로 환경, 교통, 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호남지방통계청이 지난 5월 발표한 '2000년 이후 제주 인구이동 추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최근 20년간 연평균 제주 이동자 수는 9만1499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타지역에서 제주로 온 이주민 연평균 수는 2만7224명으로, 제주를 빠져나간 2만3803보다 14.4% 많았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제주에 정착한 사람이 제주를 떠난 사람보다 많았다는 얘기다.

제주 이주민은 2000년 2만881명에서 2010년 2만1717명, 2015년 3만8544명으로 점차 늘어 제주살이 열풍이 분 2017년 4만1752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18년 3만9189명, 2019년 3만5158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주에서 타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 2만3239명에서 2015년 2만4287명, 2016년 2만7747명, 2018년 3만336명으로 점차 증가해 2019년에는 3만2222명을 기록했다.

제주의 인구유출 문제는 수백년 넘게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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