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개방·헌신'

제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천주교 제주교구장에 취임한 문창우 주교는 지난 13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이 세 가지를 약속했다.

제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제주 지역사회를 향해 늘 개방돼 있는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겠다는 각오로 제주에 헌신하겠다던 그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직을 맡게 된 데 대해서는 "신앙인으로서 작은 몫을 해 나가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작은 선물"이라는 겸손한 말로 소회를 대신했다.

요즘 문 주교는 천주교 제주교구 비전 수립과 내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고(故)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이날 오후 2시 제주시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리는 착좌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문 주교는 "제주에 있는 모든 이들이,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따스한 공동체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다음은 문 주교와의 일문일답.
 

- 제주 출신 첫 천주교 제주교구장이다. 소감은.

▶저 보다 더 똑똑하고, 더 능력 있고, 제주를 더 따뜻하게 돌볼 수 있는 분들은 많이 있다.

제게 천주교 제주교구장을 맡긴 데에는 한마디로 제주를 위해 살 수 있는가, 제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제주를 위해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는가에 대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말 제주를 보듬고, 제주를 끌어안고, 제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졌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직은) 신앙인으로서 여기에 작은 몫을 해 나가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2017년 8월부터 천주교 제주교구 부교구장을 맡았다. 지난 3년 여를 돌아본다면.

▶지난 3년 간 항상 붙잡으려고 했던 생각은 '늘 먼저 사랑하자'였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아픔들을 늘 먼저 사랑하고자 했고, 이 사랑의 가치가 천주교 제주교구민 뿐 아니라 모든 제주도민들에게도 닿기를 바랐다.

많은 분들이 제주4·3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주 지역사회에 번져 있는 제주4·3의 아픔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풀어 나가는 세상의 방식이 있었다면, 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넘어서서 이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3·1운동 10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천주교 제주교구 3·1운동 100주년 기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역사 안에서 민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다. 신성학원(천주교 제주교구 학교법인) 졸업생이자 제주의 여성 항일운동가인 고(故) 강평국·고수선·최정숙 선생의 삶의 흔적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 그랬다.
 

- 앞으로 천주교 제주교구장으로서 어떤 일을 해 나갈 계획인가.

▶먼저 제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에 대한 천주교 제주교구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동안 천주교 제주교구가 앞으로 제주에 어떻게 헌신할 것인지 구체적인 비전을 세울 예정이다.

여기에는 천주교 제주교구 내부적인 사안 뿐 아니라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찬반 갈등, 제주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에 따른 서귀포시 강정마을 문제, 환경 파괴 등의 사회적 문제까지 포함될 것이다.

오늘날 제주 지역사회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준비해야 할 내용들을 성경이라는 컨트롤타워를 통해 차근차근 잡아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 내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고(故) 김대건 신부가 탄생 200주년을 맞는 해다. 제주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처음으로 미사를 한 곳으로 의미가 있는 곳인데, 내년에 별도로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나.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이 있다.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호를 타고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천주교를 전파하러 오던 중 풍랑을 만나 용수리에 표착한 뒤 그 곳에서 처음으로 미사와 성체성사를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이와 관련한 천주교의 여러 기록을 보면 차귀도와 용수포구 등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그래서 매달 한 번씩 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한 뒤 배를 타고 차귀도로 가 표착 재현 행사을 하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쓰레기 줍기, 바다 정화 등의 작은 활동도 해 볼 생각이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고려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맞는 적정 규모로 행사를 안전하게 진행하겠다.
 

- 제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종교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데, 어떻게 바라보나.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규정을 지켜야 하는 어떤 구조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제 화두는 개방성이다.

천주교는 사회를 향해 늘 개방돼 있는 모습이어야 하고, 신자들은 신앙 안에서 경험한 것들을 개방할 수 있어야 한다. 성당이라는 장소와 경직된 구조에서 탈출해야 한다.

과거의 성인(聖人)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었다면, 오늘날의 성인은 이 세상을 위해, 제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지금이야 말로 신앙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제주도민께 한마디.

▶오랜 역사를 지나오며 맞닥뜨려야 했던 수많은 아픔들을 이겨내 주신 제주도민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지난날 제주의 아픔을 평화와 사랑, 기쁨의 가치로 승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함에 보답할 수 있는 여정에 함께 하겠다.

옛 제주 선조들이 그랬듯이 제주에 있는 모든 이들이,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따스한 공동체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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