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지금 미국엔 또 하나의 불꽃 튀는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연방 상원 2명을 뽑는 결선투표가 내년 1월 5일 실시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연방제 특유의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여야 정치권은 초긴장 속에 이 선거전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 정치에서 강한 연방제 성격을 가진 제도가 50개 주가 각각 상원의원 2명씩을 선출하여 100명으로 구성되는 상원이다. 인구 3000만 명이 넘는 캘리포니아주나 70만 명도 안 되는 알래스카주나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뽑는다. 상원의 임기는 6년이며 2년마다 치러지는 총선거를 통해 3분의 1씩 교체된다.

조지아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곳 상원의원 선거 결과가 앞으로 바이든 정부의 국내외 정책수행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3일 총선 결과 상원의원 수는 공화당이 50석 민주당이 48석이다. 조지아주 상원결선 투표에서 민주당이 2석을 모두 차지하면 양당의 의석수는 50 대 50 동수가 된다. 상원의 법안의결을 놓고 당파로 갈려 가부동수(可否同數)가 되면 상원의장인 부통령이 의안결정권을 갖는다.

이럴 경우 하원에서 다수당이 된 민주당은 대통령과 상하원을 장악하여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반대로 공화당이 이 선거에서 1명이라도 당선시켜 의석 비율 51 대 49의 다수당이 되면, 트럼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상원의 상임위원장을 전부 차지하고 바이든 정부에 강력한 견제구를 던질 수 있다. 대통령이 정책수행에서 중요한 부분이 장관, 각국에 파견되는 대사, 모든 연방법원 판사 인준권이다. 이미 보수로 크게 기운 대법원과 함께 상원마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바이든 정책 수행이 순조로울 수 없다.

조지아주는 2020년 미국정치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가 됐다. 1996년 이후 조지아에선 민주당 상원의원이 한 사람도 선출되지 않을 정도로 보수 아성이었다. 주지사룰 비롯하여 주요 정치적 요직이 공화당 일색이다. 그런데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이 1만3000표 차로 이기면서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결정적 장애물이 되었다. 또한 상원 선거전도 치열하게 벌어져 공화 민주 양당 후보 모두 50% 득표를 하지 못해 주법에 따라 내년 1월 5일 결선투표에서 결판을 내게 된 것이다. 2명의 현역 의원이 출전한 공화당은 1석도 건지지 못한 통한의 선거였고,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2석을 차지하기 위해 1월 5일을 고대하고 있다.

원래 조지아주는 올해 상원의원 1명만 뽑게 되어 있었는데, 작년 임기가 남은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이 사직하면서 특별선거라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6년 임기인 상원을 뽑는 선거에는 데이비드 퍼듀(71) 공화당 현역 의원과 저널리스트 출신 신예 존 오소프(33)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지만 모두 50% 득표에 미달했다.

이번 총선에 돌출되어 치러진 특별선거에서는 공화당 현역 켈리 뤠플러(50) 후보와 흑인 목사 라파엘 워노크 민주당 후보가 대결했는데, 민주당 워노크가 득표에 앞섰지만 50%선을 넘지 못했다. 켈리 뤠플러는 선거로 선출되지 않고 주지사가 임명한 여성 상원의원이다.

뤠플러의 전임자는 조니 아이잭슨(75) 상원의원이었다. 그의 임기는 2023년 1월 5일까지였지만 아이잭슨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작년 연말 사임을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상원의원이 사직하거나 사망하면 2년마다 치러지는 총선 때까지 임기를 갖는 후임 상원의원을 주지사가 임명하게 된다. 이렇게 임명된 상원의원의 임기는 올해 11월 총선까지 짧은 기간이고 선거에 이겨도 임기가 2년에 불과하지만 상원의원이 되면 현역으로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이점이 보통 큰 게 아니다.

임명권을 가진 켐프 주지사에겐 자천타천의 지원자가 줄을 섰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트럼프는 상원의 대통령 탄핵재판을 할 때 그 부당함을 고함치고 다녔던 조지아주 출신 덕 콜린스 하원의원을 임명하도록 로비했다. 그러나 켐프 주지사는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고 여성 기업인 켈리 뤠플러를 상원의원에 임명했다. 뤠플러는 큰돈을 가진 남편의 후원을 업고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6개월 남짓한 상원활동 중에 트럼프의 ‘광팬’이 되었다. 트럼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자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떠들고 다닐 정도로 트럼프를 신봉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선거전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미국 언론에 의하면 4명의 공화 민주 후보가 인구 약 1000만 명의 조지아주에 쏟아붓는 선거자금은 약 1억60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1800억 원이라고 한다. 선거자금이 대부분 TV 등 매체 광고비로 나가니 조지아주에 있는 TV회사 등 홍보 매체들에겐 특수가 펼쳐지는 셈이다.

한국인에게는 카터 대통령, CNN, 코카콜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으로 조금 알려진 주이지만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플로리다처럼 정치적 힘이 센 주가 아니었다. 소설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는 것처럼 남북전쟁 후에도 제일 나중에 연방에 복귀할 정도로 백인의 보수 성향이 강한 바이블 벨트다.

미국 언론은 조지아주가 21세기 들어 진보성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전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바이든의 승리와 현역 2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의 50%득표 미달이다. 따뜻한 선벨트의 환경과 일자리를 찾아 인구가 몰려들었고 특히 아시아계 이민의 정치성향이 민주당으로 기우는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필리핀 인도 한국 베트남이 아시아계의 주류를 이룬다. 과거 이들 이민 세대는 공화당 성향이었지만 2세와 뉴욕 등에서 이주해오는 아시아계 유권자들은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조지아주 유권자 중 아시아계의 비율은 2.5%로 약 18만 명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약 1만3000표 차이로 졌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아시아계 표심은 주목거리다. 조지아주 통계에 의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주민이 중국인과 비슷하게 4만5000명으로 집계되어 있으니 유권자 또한 적지 않을 것 같다.

연방제와 양원제를 갖고 있는 미국의 정치제도는 한국과 너무 달라 이해하기 난해하지만 인구규모에 상관없이 지역의 대표성이 존중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또 다른 묘미가 있는 것 같다. 2명의 조지아주 상원결선 투표는 한반도 이슈와 관련해서도 한국인에게 관심거리가 될 만하다. 한국계 유권자의 힘이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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