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요즘 우리나라의 민감 이슈 중 하나다. 특히 지방 공항이 그렇다. 공항 유치를 놓고 지역주민은 지역주민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싸움질을 한다.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영남권 신공항 논쟁이 대표적 사례다.

대개 논쟁의 핵심은 공항의 입지다. 지방에 공항, 특히 국제공항이 생기면 지역 위상이 높아지고 투자 활성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후보지역들의 주민, 행정기관, 정치인들은 기를 쓰고 덤빈다.

그러나 공항의 입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공항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관리다. 이런 점에서 제주공항은 심각한 상태다. 제주공항의 포화상태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을 이용해본 사람은 실감한다. 공항로비는 시장 바닥처럼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출발이 20~30분 지연되는 것은 예사다. 이런 제주공항의 사정 때문에 서울이나 부산 등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도 예정 시간보다 늦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이런 이착륙 포화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가 막히게 위험하고 낭비적인 일이 제주 하늘 위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월 중순 ‘뉴스1’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제주 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제 시간에 착륙하지 못한 채 상공에서 맴돌고 있는 항공기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제주공항 이용객 수가 급증하면서 시간당 항공기 이착륙횟수인 슬롯이 한계치인 34회를 넘어서고 있다. 현재 제주공항은 1분40초 간격으로 항공기가 뜨고 내리고 있으며, 제주에 접근한 항공기가 착륙하지 못해 제주 상공을 선회 비행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슬롯(Slot)은 특정 공항의 시간당 이착륙 횟수를 뜻하는 관제용어다. 제주공항의 경우 34슬롯이 한계치다. 하지만 주말과 연휴 때는 물론 악천후로 인한 결항 후엔 한계치인 34슬롯을 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1분40초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뜨고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륙할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지 못하고, 착륙할 비행기가 제때 내리지 못할 것은 뻔하다.

지난봄 실제로 이런 경험을 했다. 거의 도착할 즈음에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제주 공항 상공에 착륙대기 중인 비행기가 많아 20분 정도 선회 비행을 하다가 착륙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제주공항 포화상태를 이미 아는지라 사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비행기가 제시간에 내리지 못하고 구름층 사이를 하릴없이 이리저리 선회하는 것을 보니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0여명의 승객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비행기가 운항 시간을 넘겨 공항 인근 하늘을 배회하는 것은 승객에겐 시간낭비와 불안감을 초래한다. 공항 주변 하늘에 비행기가 줄줄이 배회하는 것은 항공기의 안전 운항에도 문제가 된다. 하늘에 떠 있는 무게 수백톤의 비행기엔 중력의 법칙이 적용된다. 멈추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를 막으려면 어마어마한 추진력으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즉 항공회사에겐 연료비가 추가되어 운항비용의 낭비가 초래된다.

정부와 제주도 당국은 이토록 위험하고 낭비적 요소도 많은, 공항 상공을 배회하는 비행기가 없도록 조치를 마련할 수 없을까. 본격 휴가철로 접어들면 제주공항의 항공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또한 중국인 여행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제주공항의 포화상태는 2025년 제주 신공항이 완공되기 훨씬 이전에 극심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한 시간에 34대가 넘는 비행기 이착륙을 허용하는 위험한 공항관리를 계속할 것인가.

공항공사는 제주공항의 활주로 보완 등 기술적 문제해결 방식 등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강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협동으로 새로운 임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가 한진그룹 소유의 ‘정석 비행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정석비행장은 대한항공 조종사 연습 비행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에어버스 등 중형비행기는 물론 보잉747 같은 대형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

문제는 정석비행장이 민간 소유라는 점이다. 그러나 세상에 불가능이 있을까. 제주공항의 포화상태를 완화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만약 정부와 한진그룹이 협상을 통해 사용료 등 해결책을 찾는다면 신공항 건설 때까지 제주공항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도지사와 지역구 국회의원이 당장 해야 할 역할도 이것이다.

제주도는 한국의 여느 지방과 달리 국제 사회에 자랑해온 일이 있다. 카본프리(탄소 없는) 아일랜드‘ 개념이다. 착륙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비행기는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한다. ’카본프리아일랜드‘ 상공에서 생겨선 안 될 일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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