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사흘 동안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제7회 국제전기차엑스포(IEVE)가 열렸다. 원래 5월에 열리기로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됐다가 이번에 대면과 비대면 배합형태로 열렸다. 현장에서 엑스포를 보면서 두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하나는 엑스포를 포함한 회의산업(MICE)의 위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후변화와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대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방역 지침에 따라 구경꾼이 북적대는 엑스포가 될 수 없었다. 방역 분위기에 압도되어 전기차 엑스포라면 으레 전시되어야 할 전기차 최신 모델 전시도 없었다. 테슬라 모델3 몇 대가 나와 시승을 원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중문관광단지 안을 돌아다녔다. 처음 타봤는데 차 안 분위기가 좋았다. 마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모니터 터치로 움직이는 차에 익숙하지 않아 불안했지만,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게임을 즐기며 사는 청소년들은 이런 차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회 엑스포까지는 전기차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올레길을 지나던 관광객들이 배낭을 지고 전시장을 찾아 신모델 전기차에 앉아보곤 했지만 올해는 일반 관광객의 모습은 뜸했다. 전시장이건 콘퍼런스룸(회의실)이건 마스크로 입을 막고 2m 간격을 유지하려니 엑스포의 특징인 왁자지껄함도 없었다. 식사시간에도 같은 테이블에 앉았지만 투명 플라스틱을 사이에 두게 되니 대화가 자유스러울 수 없다.

해외에 못 나가는 관광객이 제주를 찾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서는 제주도가 노리는 관광산업의 알짜인 회의관련 비즈니스는 힘들겠다 싶었다. 산업박람회 하면 독일이다. 연간 25만 개의 크고 작은 전시회가 열리는 독일에서 이들이 거의 취소되어 항공여행, 전시시설설치, 호텔, 식당, 택시, 전시안내, 관광서비스 등 관련 업종을 망라해서 연간 330억 달러(약 36조원)의 비즈니스가 증발했다는 보도가 실감나게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대면)과 오프라인(비대면)이 배합되어 열린 관련 콘퍼런스는 지구촌의 최대 화제가 된 기후변화와 전기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한 것을 느끼게 하는 이벤트였다. 제한된 인원이었지만 회의장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스튜디오 분위기를 조성했다. 회의 주제에 대한 주 발표자가 오히려 서울이나 실리콘밸리에서 발표하면서 제주도의 청중을 상대로 말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온라인 콘퍼런스는 시간적 제약과 비용문제로 초대가 어려운 전문가의 참여가 가능해져서 정보와 지식의 교류장으로 적절한 역할을 했다.

콘퍼런스룸에서는 이 엑스포의 주제인 '전기차'와 더불어 '배터리'가 가장 많이 거론된 키워드지만 시류를 반영하듯 '카본프리' '수소차' '자율주행' '그린수소' '탄소중립' '넷제로'(Net Zero) '지속가능성' '기후변화' '스마트시티'란 키워드들이 관련 세미나를 따라 연사와 참가자 사이를 날아다녔다.

농기계전동화 세미나에서는 기존차량의 전기차튜닝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농가 고령화를 반영한 듯 농기계의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이는 작업현장에서 느끼는 전기차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전기차정책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기획위원장(전 유엔대사)은 '실존적 위협'과 '제6의 멸종' 개념을 꺼내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전기차와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수소 에너지는 최근 떠오르는 화제인데 이를 반영하여 이번 엑스포에서는 '그린수소와 에너지전환'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그린 수소'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수소가 아니라 물분해를 통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얻어내는 수소를 말한다.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탄소배출 없이 물분해를 상업적으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린 수소는 온라인으로 열린 실리콘밸리비즈니스포럼에서도 거론됐다. 캘리포니아의 벤처기업 'SGH2에너지' CEO 로버트 도가 플라스틱과 종이 폐기물에서 수소를 분리해내는 공법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지난 9월에 이어 실리콘밸리의 벤처회사 라이징타이드(Rising Tide)의 오사마 하사나인 회장이 그곳 벤처기업을 선정해 온라인으로 연 실리콘밸리비즈니스 포럼은 그린수소, 흑연소재를 사용한 배터리 효율 강화 기술, 자율주행용 센서 등 '지속가능성'을 사업기회로 활용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추세를 읽는 기회가 됐다. 해마다 5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국제전기차엑스포에 실리콘밸리 벤처기업과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기로 합의하고 하사나인 회장과 김대환 문국현 IEVE 공동위원장이 MOU에 서명했다. 실행되면 큰 성과다.

세계는 '2050년 넷제로'를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내년 1월20일 바이든 대통령정부가 출범하면 파리기후협정에 복귀하고 '클린에너지혁명'을 점화한다. 중국도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유럽은 이미 탄소배출을 1992년에 비해 괄목하게 줄여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75조원 규모의 그린뉴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열린 오프라인 위주의 비대면 콘퍼런스였지만 2021년 많은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임을 느끼게 해줬다.<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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