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도내 고을을 순찰하는 내용과 행사장면 등을 담고 있는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국보 승격이 추진되고 있다. 탐라순력도가 국보로 지정되면 제주지역 제1호 국보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뉴스1 제주본부는 탐라순력도와 관련한 다양한 역사 기록과 연구 사례를 통해 7차례에 걸쳐 탐라순력도을 소개하고 역사적·문화재적 가치와 가치확산을 위한 추후 활용 방향 등을 소개한다.
 

‘매번 봄과 가을에 절제사가 친히 방어의 실태와 군민의 풍속을 살피는데, 이를 순력이라 한다.’

조선시대 지방관의 제주 고을 순행을 그린 현존 유일의 기록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서문에 적힌 문장이다.

여기서 엿볼 수 있듯 조선시대 제주 순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을의 관아나 각 고을에 속한 방호소 등을 점검해 방비 태세를 강화하는 일이었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가 어느 지역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은 제주목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특히 조선시대 제주는 변방에 위치해 13~16세기 왜적의 침입이 빈번했고, 이양선(異樣船)이 수시로 출몰하는 등 해안방어가 매우 절실한 상태였다.

탐라순력도 제작자이자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李衡祥·1653~1733)은 국방 요충지로서 제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탐라순력도에 여실히 그려놨다.

탐라순력도 41면 중 군사훈련 및 방어유적과 관계된 그림만 무려 17면, 41.5%를 차지한다.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체계는 ‘3성 9진 25봉수 38연대’로 이뤄져 있었다.

제주 연해를 따라 9개 진성 즉, 화북진·조천진·별방진·수산진·서귀진·모슬진·차귀진·명월진·애월진에 조방장이 파견돼 각 진성의 군기 수리와 군사훈련이 이뤄졌다.

봉수는 산악을 연결하고 연대는 해안선을 연결하는 통신연락시설이었고 조선시대 제주에는 25봉수와 38연대가 있었다.

이들 방어시설 유적은 현재까지도 제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면의 그림에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방어를 위해 설치된 3개의 읍성과 9개의 진성에서의 군사훈련 장면이 생생히 담겨 있다.

특히 각 면에 읍성, 연대, 봉수 등 당시 제주도 내 군사행정 시설과 방어시설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실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자료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이 중 군사훈련 장면과 방호소 등을 점검하는 모습을 담은 조점(操點)은 ‘조천조점’, ‘별방조점’, ‘정의조점’, ‘서귀조점’, ‘대정조점’, ‘명월조점’, ‘애월조점, ’제주조점‘ 등 8도면으로 가장 많다.

또 성 위에서의 훈련을 그린 성조(城操) 2도면과 활쏘기 시험을 담은 사회(射會), 시사(試射), 강사(講射) 5도면, 군관을 보내 군대를 점검하는 모습을 그린 점부(點簿) 2도면 등이 뒤를 잇는다.

군사훈련 장면을 담은 화첩뿐 아니라 명승지 탐방 등 연회행사를 그린 장면에도 군사시설이 들어가 있다는 점 역시 순력의 방점이 군사시설 점검과 군사훈련에 찍혀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광표 서원대 교양대학 교수는 지난 11월 진행된 ‘탐라순력도의 문화재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학술세미나’에서 "탐라순력도의 내용으로 볼 때, 이형상 순력의 핵심 목적은 제주지역의 군사방어 체계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며 "이형상은 군사를 점검하고 조련했으며 무기, 군량 미, 둔마 등의 상황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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