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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봉사하고 기부하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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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음으로 해서
한 사람의 생명일지라도 보다 편안히 숨쉬었음을 깨닫는 것
이것이 성공이다."

위 구절은 1982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수석의 영예를 안은 여학생의 졸업 연설 중 한 대목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 싯귀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졸업 연설에 인용했던 것이다.

이 여학생이 마이크로소프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부인 멀린다 게이츠다. 그는 빌 게이츠의 아내로 더 유명하지만 남편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 '빌&메린다게이츠 재단'을 공동 운영하는 자선사업가로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아이들의 질병 예방과 치유에 돈과 마음을 쏟는다.

얼마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멀린다 게이츠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내재된 남을 돕는 봉사 정신을 털어놓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에머슨의 그 싯귀가 내 귓전에 생생히 남아 있고, 그 구절이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라고 말했다.

음미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에머슨의 이 싯귀는 어마어마한 담론인 것 같으면서도 남을 돕는 사소한 일들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에머슨의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무척 좋아하고, 이 싯귀에서 행복과 성공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있다.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제주시 '아라요양병원 원장 이유근씨(77)다.

그의 할아버지는 자녀 5남매 중 넷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부인 3명과 사별하면서 한이 맺혔다. 중학생이 된 손자를 보며 의사가 되라고 말했고, 이 씨는 할아버지 소원한 대로 의사가 되었다. 그는 1980년대 의료시설이 척박했던 제주도에서 동료 의사들과 뜻을 모아 종합병원을 세웠고, 1999년엔 더 큰 규모의 종합병원을 설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종합병원 원장에서 퇴직한 후 그는 의사인 동생과 더불어 요양병원을 세웠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선 병원설립을 많이 한 의사로 알려졌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평가하지만, 그보다는 그의 봉사정신과 기부정신이 참으로 남달라 보인다.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뙤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고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이것이 성공이다)"

이유근씨가 좋아하는 에머슨의 싯귀다. 멀린다 게이츠처럼 고등학교 때 이 시에 심취한 것은 아니지만 의사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에 새겨진 인생의 나침판 같은 좌우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의과대학생 때부터 의료봉사가 몸에 배었지만, 작심하고 봉사와 기부활동에 마음을 다잡은 것은 조선대 의대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9년 나이 서른 여섯에 고향 제주도로 귀향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소득의 10%를 사회에 기부하기로 마음먹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냈다. 딴 마음이 들지 못하게 첫 봉급 50만원에서 10%인 5만원을 별도 예금계좌를 만들어 입금했다. 이 계좌에 들어온 돈은 개인용도로 쓸 수 없고 기부와 봉사용 돈으로 한다는 자신과의 맹약이었다.

병원장을 오래 한 그는 기밀비, 외부 강연이나 회의에서 받는 연사료를 기부용 통장에 입금해서 기부활동을 했다. 기부금은 소득공제가 됨으로 환불을 받으면 그것도 기부금 용 통장에 입금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실질적 기부액은 소득의 10%를 훨씬 넘었다. 많을 때는 연간 4000만 원 정도가 기부용 계좌에 적립됐다.

그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불우한 청소년을 교육하는 동려야간학교 등 돈이 궁한 교육기관이나 사회시설에 기부했다. 그에겐 '김영갑갤러리' 이사장을 비롯하여 썼던 감투가 참 많은데 대부분 그의 시간과 돈이 필요했던 곳들이다. 4년간의 제주자원봉사협의회 회장직은 그의 봉사인생의 총정리판인 것 같다.

이유근씨는 사회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사람은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정신을 항상 강조한다. 그는 이 정신에 부합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부라고 생각한다. 그는 "기부 정신은 개인 소득을 덜어내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020년이 저문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세상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투쟁은 그칠 줄 모르고, 경제는 위태위태해 보인다. 암울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이 지구촌에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숨쉬기 편리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소리없이 봉사하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희망이 있다. 10년간 말없이 10억원을 기부했다는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에머슨의 '성공이란 무엇인가'의 앞부분에는 더 많은 성공의 조건들이 나열된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로부터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인정을 받고
잘못된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찾아내는 것"

2021년엔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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