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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위기에 선 미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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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하기 직전, 그러니까 4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앞날을 놓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월가의 전설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아주 상반된 예측을 내놓아 흥미를 끌었다.

일생을 강대국 세력 균형 문제에 천착했던 93세의 키신저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는 경이로운 인물이며 미국을 위해, 그리고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대단한 기회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돈의 흐름과 씨름하며 살아왔던 86세의 소로스는 몹시 부정적 예언을 했다. “트럼프는 사기꾼이자 잠재적 독재자다. 자기모순이 가득한 인물이며 실패할 것으로 확신한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부터 트럼프는 참모들과 치밀하게 협의해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생각을 트위터에 먼저 올려 국정을 흔드는 쇼맨십을 구사하면서 미국 안에서는 물론 국제사회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무시하고 국제적 리더로서의 역할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 트럼프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북한 김정은과의 핵 폐기 직접 담판을 벌이는 것을 보며 행여나 키신저의 예언이 맞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임기를 보름 남겨놓은 지난 6일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며, “트럼프가 실패할 것”이라는 소로스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으니 이미 ‘실패한 대통령’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그의 실패의 차원은 달라졌다. 단순한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낸 ‘본질의 실패’다.

그날 미국 의회 의사당은 대통령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에 동조하는 수천 명의 광신적 지지자들에 의해 유린되었으며 이 와중에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조 바이든의 제46대 대통령 당선을 공식 확정하는 상·하 양원합동회의는 이들의 난입에 의해 4시간 동안 중단되었다. 미 의사당은 240여 년의 미국 역사상 미·영 전쟁 중인 1814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됐던 경우를 제외하고 폭력세력에 의해 유린된 사례가 없는 미국 민주주의 성채와 다름없는 곳이다.

의사당 벽을 기어오르고 유리창을 부수고 회의실을 점거하는 등 트럼프 지지자들의 광란의 행태에 세계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대한 논쟁이 민주 공화국이 아닌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에서처럼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을까. 바나나 공화국은 부정과 무질서가 판치는 후진국을 경멸하는 말이다.

의사당 유린 사태의 도화선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를 도둑맞았다‘ 는 주장을 펴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6개주의 선거결과에 불복하여 재개표와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자 연방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바이든 당선을 선언하지 못하도록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공화당 의원을 압박하는 시위를 벌였다. 특히 상원의장을 겸한 펜스 부통령에게 자기편을 들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펜스가 ’나의 권한을 넘어선 일‘이라며 거부했다. 분통이 터진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백악관 근처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 나타나 ”우리는 양보하지 않는다“며 의사당으로 행진할 것을 촉구했고 얼마 후 의사당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조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는 즉각 TV에 나와 폭력을 멈추도록 하라”고 촉구했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챘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 집으로 돌아가라”는 동영상 메시지를 트위터에 띄웠다. 그날 오후 늦게 폭력사태가 진압된 후 재개된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펜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을 선포하며 혼란은 일단락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실한 동지였던 펜스 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폭력은 패배했고 자유가 승리했다’고 외치며 일의 수습에 나선 것은 분열된 미국 정치에서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으로 보였다.

미국이라고 하지만 240년 민주주의 역사에 교과서적인 정의와 페어플레이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나라를 위해 승자는 절제하고 패자는 순응하며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임기의 마지막 날들을 4년 전 야당후보인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그 선거제도를 불신하고 나섰다. 결국 의사당을 아수라장으로 이끈 장본인으로 찍히고 탄핵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다. 미국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며 미국의 국제적 신뢰감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 사태는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 제도를 공유하는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시사점 또한 크다. 240년 전통의 민주주의도 잘못된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치명적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제도가 아닌 사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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